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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연산군과 장녹수 희대의 광인과 요부의 만남 역사적으로 왕을 가지고 논 여인의 이야기가 많은데 조선의 장녹수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장녹수와 연산군의 이야기는 다른 것과 조금 다르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연산군이 단순히 미모의 여인에게 빠진 것이 아니다. 장녹수의 이력도 독특한데다가 연산군의 후궁으로 들어간 상황도 특이하다. 아마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화끈하고 다사다난하게 산 여인이 아닐까 싶다. 장녹수와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장녹수는 노비 신분에서 왕의 후궁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의 여인이였다. 이렇게 왕을 가지고 논 여인들의 공통점은 사실 굉장히 똑똑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모를 넘어선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노비였다. 다른 왕의 여인들처럼 엄청난 미모는 아니었는데 대.. 더보기
몽골군이 왜 유럽을 지배하지 않고 퇴각했는지 나무가 말해준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던 나라는 몽골이다. 몽골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점령했다. 1241년 에 유럽인들은 몽골군대를 '호드'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다. 그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강력한 몽골 군대는 헝가리와 폴란드 군대를 무찌르며 유럽의 상당 부분을 정복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정복한 곳을 지배하지 않고 불과 1년이 채 안되어 소리소문없이 썰물처럼 퇴각을 해버렸다. 그들이 전쟁에서 패한것도 아니었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에 대해 미스터리하게 생각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연구하며 새로운 힌트를 얻었다. 그것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닌 나무의 나이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테를 보고 그때 당시의 환경을 유추해낸 것이다. 1241년 겨울은 유난히 춥고 많은 눈이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보기
선의왕후 vs 영조 형수와 시동생의 집안싸움 선의왕후는 조선 경종의 왕비다. 14살의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었고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경종과 선의왕후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경종은 몸이 약했고 세자를 책정하려 했으나 아이가 없었다. 이에 노론 4대신과 왕대비였던 인원왕후는 경종의 배다른 동생 연잉군을 후임으로 책봉했다. 이 연잉군이 후에 영조다. 일이 이렇게 되니 자신의 아이를 왕으로 만들지 못한 선의왕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조는 적통이 아니었다. 무수리의 아들이라 이것은 그에게 평생의 콤플렉스였다. 이런 영조가 세제로 책봉이 되자 선의왕후는 비밀리에 왕실의 씨가 바뀌었으니 바로 잡아라며 하교를 내렸다. 그럼 선의왕후는 후사도 없는데 뭐하러 이렇게 신경을 쓴걸까? 선의왕후는 아무래도 권력욕이 있었나보다. 아니면.. 더보기
어우동 조선 최고 성 스캔들의 주인공 어우동이라는 이름을 대부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어우동은 책, 만화,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선시대의 여인으로 조선 최고 성 스캔들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조선이 유교의 나라라고 해서 모두 남녀칠세부동석의 원칙에 따라 나라가 돌아간 건 아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다. 전쟁중에도 사랑을 하는데 조선시대라고 다를까. 어우동. 어을우동이라고도 한다. 그녀가 무슨 태생이 천한 기생이라 생각하겠지만 어우동은 양반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박윤창, 어머니 정귀덕 사이에서 태어날 딸이다. 그리고 왕족이다. 훗날 기녀같은 생활을 했는데 정식 기녀는 아니다. 이때의 기녀는 몸만 파는 여자가 아니라 문학과 음악을 기본소양으로 갖춘 이른바 연예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우동도 시인, 서예가, 작가, 무희이면서 .. 더보기
측천무후 중국 유일의 당나라 여황제 중국 역사에서 섭정을 한 황후는 많다. 그리고 왕을 치마폭에 넣고 국정을 마음대로 한 여인들도 많다. 하지만 황제가 된 여자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유일하다. 당고종의 2번째 황후로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고 나라를 주물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섭정이나 실세들이 안좋게 생을 마감한데 비해 측천무후는 권력을 놓치지 안고 천수를 다 누렸다. 이것 만으로도 대단한 여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잔혹한 악녀이기도 하다. 무측천이라고도 부르는 측천무후는 당의 개국공신이었던 무사확의 차녀로 태어나 당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했다. 이름은 무조. 개국공신의 자녀가 왜 후궁으로 들어가나 생각하겠지만 그때의 후궁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종의 벼슬이었다. 후궁이었지만 당태종에게 여자로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건 측천무후가 똑똑하.. 더보기
경희궁 회상전 왜 사라졌을까? 1899년부터 20년간을 한국에 머물렀던 미궁의 간호선교사 새디 웰본이 수집했던 사진을 그녀의 손녀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 여사가 한국의 국립민속발물관에 기증했다. 이 사료에는 희귀 사진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경희궁 회상전 사진이 있었다. 경희궁은 경복궁이나 창경궁에 비해 지명도가 약한데 이는 이궁이었기 때문이다. 이궁은 태자궁 또는 세자궁의 다른 말이다. 조선후기 광해군때 지어진 궁으로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다. 이를 영조때 경희궁으로 바꿨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궐이라고 불렀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합해서 동궐이라고 불렀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불탄 후 복구되기까지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경희궁은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해 자정전, 침전인 융복.. 더보기
응렴 경문왕 귀는 당나귀 귀~ 누구나 다 아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있다. 전세계에 비슷비슷한 동화가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스 신화가 전세계에 퍼져 비슷한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당나귀 귀의 주인공인 임금은 신라 경문왕이다. 경문왕은 이름은 응렴. 왕 직계손은 아니고 47대 헌안왕이 화랑이었던 응렴을 마음에 들어해 두 딸중 한명과 결혼을 시키려 했다. 이에 응렴의 집에서는 예쁜 둘째딸과 결혼을 하라고 했으나 화랑의 상수인 범교사가 첫째딸과 결혼을 하라고 충고해줬다. 후에 헌안왕이 죽으며 첫째 사위인 응렴에게 왕위를 물려 줬다. 이가 경문왕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당나귀 귀 이야기는 신라 48대 임금인 경문왕의 이야기다... 더보기
영화 신기전 미사일이 나와서 깜놀했지만... 세종시대에 새로운 화기 개발이 있었다고 한다. 신기전. 그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신기전은 실제했던 무기라고 하는데 정작 영화에 대해서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뿐. 다큐도 아니고 그냥 재미있게 각색해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너무 과하게 했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미사일 급의 대량 살상무기는 못만들었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통쾌하기는 하다. 고려 이후로 한번도 제대로 된 독립국가를 만들어보지 못한 민족으로 이런 국뽕급 영화도 스트레스 해소에 나쁘지는 않다. 외세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지만 그리 심각하게 그리지는 않고 코믹적인 요소를 많이 넣었다.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사실적인 역사는 그냥 잊자. 그러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지나친 고증은 재미를 헤친다. 마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