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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선 조직폭력배 검계 의적인가 조직폭력배인가 검계(劍契)는 검으로 의기투합했다는 의미로 숙종 시기 이후 기록된 조선의 범죄 조직이다. 당연히 범죄조직이니 무기를 소유했을 테고 조선시대니 검일 테지만 어쨌거나 검을 차고 다녔다고 한다. 이렇게 범죄 조직을 이루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그냥 나쁜 짓 하려고 모이거나. 이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모이기는 했지만 하는 짓은 막장. 조직폭력배나 마피아보다 더한 짓을 했다. 그야말로 극악무도. 사회에 대한 불만은 신분사회에 누구나 갖게 되는 불만이다. 특히 조선시대. 서얼이나 중인으로 출세가 불가능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노비나 하층민으로 구성된 살주계와 비슷한 성격이나 조금 더 신분이 높은 사람들로 구분되었으니 범죄조직에도 신분이 있는 아이러니. 무를 숭상.. 더보기
비격진천뢰 - 왜구를 놀라게 한 조선의 신무기 왜구들이 비격진천뢰에 놀란 이유는? 비격진천뢰는 조선시대의 포탄이다. 포탄이면서 폭탄이다. 이유는 이 포가 일종의 시한폭탄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포들은 파괴력으로 승부하는 방식이었다. 커다란 쇳덩어리나 돌로 된 포탄을 멀리서 달려 성이나 함선을 파괴하는 방식이었다. 즉, 세게 때리는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사람이 돌을 던지는 것을 포를 사용해 더 큰 돌을 더 멀리 던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비격진천뢰는 도화선이 달린 폭탄을 날려 도착한 곳에서 터지게 만든 것이다. 일반적인 폭탄의 도화선이 밖으로 돌출되어 있고 끝까지 심지가 타 들어가면 터지는데 반해 이것은 안쪽까지 심지를 심어놓아 안에서 다 타 들어가면 터지게 되어있다. 지연 신관 폭탄으로 임진왜란 중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했다. 이 폭탄 겸 포탄.. 더보기
흥선대원군이 된 파락호 이하응 조선 말기의 절대적 권력자 하면 흥선대원군이 떠오른다. 흥선대원군은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를 늦췄다는 원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도 같다. 또 하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파락호다. 파락호는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 말한다. 흥선대원군의 본명은 이하응. 하지만 흥선대원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차남인 어린 고종을 대신해 국정을 이끈 추존왕이다. 권력을 잡기 전에는 파락호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정도까지 막장 생활은 아니었다는 게 정설이다. 기방을 출입하다 욕을 당하고 상갓집의 개라고 불릴 정도였다는데 사실 이하응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의해 .. 더보기
고약해 조선시대의 충신? '사람 참 고약해' 라고 말할 때 쓰는 '고약해'. '고약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맛, 냄새 따위가 비위에 거슬리게 나쁘다. 얼굴 생김새가 흉하거나 험상궂다. 성미, 언행 따위가 사납다 이다. 비슷한 말로는 괴팍하다, 나쁘다, 이상하다 가 있다. 이렇게 형용사로 쓰이는 고약해가 사실은 사람 이름에서 유래가 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 조선시대에 고약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는 문헌에 나오는 사실로 세종실록에 나온다. 당연히 이름이므로 한자가 있다. ‘고약해(高若海)’. 의미도 좋다. 바다같은 인물이 되라는 의미다. 세종시대에 대사헌을 지냈던 문신이다. 고약해라는 이름이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사실 고약해는 임금에게 직언을 하는 충신이었다. 고약해의 직언이 얼마나 고약해던지 세종도 실은 심기가 .. 더보기
칭찬받은 살인자 김은애의 강진 안 소사 살인사건 1790년 조선 정도때 전남 강진현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안 소사라는 노인. 평소 사악하고 간교하여 남을 모해하는 것을 좋아하던 노파였지만 무려 20여군데가 난자되어 죽어있었다. 이 정도의 잔혹성이라면 우발적인 살인이라기 보다는 원한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컸다. 안노인은 원래 기생이었지만 젊어서 모은 돈은 탕진하고 구걸을 하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불쌍한 삶을 살고 있던 노인을 누가 죽인걸까? 현감의 조사끝에 밝혀진 범인은 마을의 처자 김은애로 밝혀졌다. 아녀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잔인한 살인을 할 수 있었을까? 내막은 이렇다. 안노인에게는 최정련이라는 조카손자가 있었은데 마을의 김은애를 짝사랑 하고 있었다. 이를 안 안노인은 김은애를 엮어주기 위해 술수를 썼는데 둘이 정분이 났다는 .. 더보기
조선 김암회 김인숙 치사사건 조선시대 1901년 11월 강원도 양구에서는 갓 결혼한 어린 신랑신부가 죽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시대 범죄 보고서인 조선후기 검안 보고서에 실린 이야기다. 김우여 집안 15살 어린 신랑인 감암회에게 시집을 간 18세 김인숙은 모진 시집살이를 하고 있었다. 시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김여인은 남편이 없어지는 길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남편을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자고 있던 김암회를 허리띠로 목졸라 숨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시어머니 방여인의 방으로 가 남편이 숨을 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놀라 남편 김우여에게 말하고는 같이 아들의 방으로 갔다. 가보니 정말 김암회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김암회의 목덜미에 허리띠가 있는 것을 보고 김여.. 더보기
기생 가희아 조선의 옹주가 되다 혜선옹주 홍씨. 기생 관명 가희아다. 보천 출신으로 가무에 능한 기녀였다. 기록에는 가이옹주 또는 혜선옹주로 기록되어 있다.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이름이 자자했다. 실록에 의하면 태종 7년 가희아와 내연을 맺은 사내들에 의해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정승판서 김우와 황상이다. 당대 내놓으라 하는 권력자인 두 남자가 가희아를 두고 싸웠는데 그 싸움이 가희 볼만하다. 얼마나 가희아가 대단했으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병사를 일으켜 싸움을 했다. 김우는 기병과 보병 30여명을 황상의 집에 보내 포위하고 황상의 내실에 들어가 가희아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가희아를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 다시 가희아를 빼앗아 오게 하자 황상은 이를 듣고 말을 타고 추격을 했다. 물론 황상도 군사 20여명을 데리고 쫓아 김우의 .. 더보기
연산군과 장녹수 희대의 광인과 요부의 만남 역사적으로 왕을 가지고 논 여인의 이야기가 많은데 조선의 장녹수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장녹수와 연산군의 이야기는 다른 것과 조금 다르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연산군이 단순히 미모의 여인에게 빠진 것이 아니다. 장녹수의 이력도 독특한데다가 연산군의 후궁으로 들어간 상황도 특이하다. 아마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화끈하고 다사다난하게 산 여인이 아닐까 싶다. 장녹수와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장녹수는 노비 신분에서 왕의 후궁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의 여인이였다. 이렇게 왕을 가지고 논 여인들의 공통점은 사실 굉장히 똑똑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모를 넘어선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노비였다. 다른 왕의 여인들처럼 엄청난 미모는 아니었는데 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