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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측천무후 중국 유일의 당나라 여황제

중국 역사에서 섭정을 한 황후는 많다. 그리고 왕을 치마폭에 넣고 국정을 마음대로 한 여인들도 많다. 하지만 황제가 된 여자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유일하다. 당고종의 2번째 황후로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고 나라를 주물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섭정이나 실세들이 안좋게 생을 마감한데 비해 측천무후는 권력을 놓치지 안고 천수를 다 누렸다. 이것 만으로도 대단한 여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잔혹한 악녀이기도 하다.


워낙 역사적으로 대단한 인물이라 중국에서는 영화와 드라마라 많이 만들어졌다


무측천이라고도 부르는 측천무후는 당의 개국공신이었던 무사확의 차녀로 태어나 당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했다. 이름은 무조. 개국공신의 자녀가 왜 후궁으로 들어가나 생각하겠지만 그때의 후궁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종의 벼슬이었다. 후궁이었지만 당태종에게 여자로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건 측천무후가 똑똑하고 재치 있으나 여자로는 너무 세다고나 할까. 당태종은 무조를 건드리지 않았고 태종이 죽자 출가해 비구니로 지내게 되었다. 그뒤 고종이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여자를 취했다고 할지 모르나 후궁이기는 했지만 당태종은 여자로서 무측천에게 관심이 없었다.


실제초상? 드라마와 너무 다르잖아


무조는 궁에 들어와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처세를 했다. 야욕이 있었던 듯 보인다. 궁에 다시 들어올 당시 고종의 왕황후와 첩 소숙비는 고종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무측천은 일단 힘을 가진 왕황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고 신임을 얻었다. 그러던 중 측천무후가 고종의 아들을 낳게 되자 황후자리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어야 황후가 될 수 있으니 왕황후와 그 아들은 걸림돌이었다.



측천무후는 다시 딸을 낳았다. 그리고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 이에 위기를 느낀 왕황후는 이번에는 소숙비와 힘을 합쳐 측천무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에 무측천은 무서운 계략을 꾸몄다. 왕황후가 측천무후의 공주를 보고 간 후 자신의 딸을 죽여 왕황후가 죽였다고 누명을 씌운 것이다. 이는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사가들은 측천무후의 잔혹성과 야욕때문에 그녀가 죽였을거라 추측하고 있다. 고종은 공주를 예뻐했는데 이를 왕황후가 죽였다고 하자 고종은 대노하여 왕황후를 폐위시키려 했다.



그러나 의외로 측천무후는 반대를 했다. 왕황후가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봐달라 하며 오히려 고종에게 더욱 환심을 샀다. 그리고 왕황후의 주변궁녀들과 환관까지 매수했다. 그런 후 왕황후가 황제와 빈을 저주했다는 것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침이 꽃힌 저주 인형등이 발견되었다. 모두 주변사람을 매수한 측천무후의 계략이었다.



고종은 이제 더 이상 뒤돌아볼 여지 없이 왕황후를 폐위했다. 왕황후와 힘을 합친 소숙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별채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측천무후는 왕후가 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문득 그녀들이 그리워 별채로가 그녀들을 보고 왔다. 이에 무측천은 위기를 느껴 그녀들을 태형으로 다스린다. 태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사형이나 마찬가지다 몽둥이로 몇 십대를 맞으면 죽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냥 태형도 아니고 손과 발을 자르고 술에 담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측천무후는 잔인했다.



두 여인의 죽는 모습은 판이했다. 왕황후는 태형을 받고 손발이 잘리우면서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숙비는 발악을 하며 측천무후에게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다음생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너는 쥐로 태어나라. 내가 네 목을 물어뜯겠다"라며 저주를 퍼붓고 죽었다고 한다. 강인하고 잔혹한 측천무후도 이 저주가 무서웠던지 궁에서 고양이을 못기르게 했다.



측천무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전횡을 일삼고 무씨들을 등용했다. 무측천의 권위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여지 없이 잔혹하게 죽여버렸다. 고종은 사실상 허수아비였고 자신이 모든 정무를 처리했다. 고종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더욱 심해졌고 당연히 권력은 점점 더 커져갔다. 고종이 다시 복귀했을 때는 이미 측천무후의 권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후였다. 후에 측천무후가 아꼈던 재녀 상관완와(밑에 다른 글 보기 참조)의 아버지인 상관의와 반전을 시도했으나 상관의는 반란죄로 처형당했다.



고종은 장남인 이홍을 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그러면 측천무후의 권력이 줄어들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권력욕은 아들에 대한 사랑보다도 더 컸다. 아들과 권력다툼을 하게 되었다. 이홍은 갑자기 요절했는데 모두 그녀가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이미 딸도 죽인 전력이 있으니... 이후 차남 이현이 태자로 책봉되자 이번에는 반란죄를 뒤집어 씌워 유배를 보내고 뒤에 자객을 보내 죽여버렸다.



다시 3남 이현(둘째와 한자는 다르고 음이 같음)을 태자로 삼았다. 고종이 죽고 이현이 왕위(후에 당중종)에 오르자 그의 아내 위황후와 그의 아버지 위현정이 권력을 잡으려 하자 모두 쫓아내버린다. 이제 막내아들 이단(후에 당예종)만 남아 그를 제위에 올려 예종이 되었지만 역시 폐위 시키고 반대파를 모조리 숙청해버린 뒤 드디어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중국 최초의 여성 황제인 성신여제(성신황제)다. 국호도 주나라로 바꿔 버린다. 



그러나 문제는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 후사가 없었다. 자기 아들들을 모조리 내쫓거나 죽여버렸으니 무슨 후사가 있겠나. 이에 다시 3남 이현을 태자로 책봉했다. 그리고는 권력을 마음껏 누렸다. 자신의 침실에는 늘 미소년을 들여 잠자리를 같이 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악녀였지만 의외로 그녀가 집권할 당시 백성들에게는 태평성대였다고 한다. 민생에 신경을 썼고 군사적으로도 안정되었다. 권력자들에게 피바람이 부니 오히려 권력자들의 청렴도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황제 시기였던 것 답게 과부도 재혼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일처다부제가 시행되었다. 살기가 나쁘지 않아 백성들 사이에는 "황제가 이씨든 무씨든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나?"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측천무후도 늙고 병이 들자 마음이 약해졌던 것 같다. 태자인 중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자신을 황제라 칭하지 말고 측천대성황태후라 칭하라고 했다. 그래서 황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측천무후라 부른다. 이에 따라 주나라도 폐하고 도로 당나라가 되었다.(응?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그리고 자신의 묘비에는 한글자도 새기지 말라고 했다. 모든 권세를 누린 황제의 죽음으로는 좀 이상한 유언이었다. 죽음에 직면해서야 권력무상을 깨달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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