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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상추 일기 집념의 조선 무관 도전기 이 관직에 대한 집념 조선시대에는 뛰어난 역사서가 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 그런데 개인적으로 쓴 역사서들도 있다. 개인의 일기인데 가장 유명한 건 바로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조선시대에는 또 하나의 조선 후기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있는데 바로 '노상추'라는 인물이 1763년부터 1829년까지 무려 67년간이나 매일 기록한 일기다. 여기에는 왕의 시선이 아닌 일반인의 시선으로 쓴 생활상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름이 노상추? 그는 누구인가? 이름이 상추라 좀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는데 盧尙樞 한글 이름은 아니다. 경북 구미시 선산 출생으로 18세부터 84세까지 일기를 썼다. 집념의 사나이인데 35세 이전까지 무관이 되기 위해 고생한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년에는 잘 .. 더보기
샴쌍둥이 조선왕조실록의 괴물 아이? 옛날에도 있었던 자연현상 샴쌍둥이는 결합쌍생아인데 샴쌍둥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이유는 태국 출신으로 서커스단에서 일한 벙커 형제가 유명해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태국의 옛 이름이 시암이었고 이것이 붙어 샴쌍둥이라는 고유명사처럼 되었다. 이 샴쌍둥이는 마치 천벌이나 현대에 와서 환경오염 등으로 생기는 것처럼 인식되고는 하지만 이는 자연적인 돌연변이나 기형일뿐이다. 일란성 쌍태아로 수정란이 둘러 나눠질 때 불완전하게 나눠져 몸의 일부가 붙은 상태가 된다. 당연히 샴쌍둥이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에게서도 볼 수 있고 벙커 형제 이전의 옛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샴쌍둥이의 기록이 있는데 역사기록하면 당연 조선왕조실록, 그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샴쌍둥이 기록 1. 영조실록 “은.. 더보기
무신정권에 반역을 꿰한 음양술사 최산보 주연지 옛날 정치권은 우리나라나 해외나 종교인들이 권력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최고 권력자의 옆에서 그들을 미혹하는 말과 아첨으로 그러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외 없이 간사한 인물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종교인이 권력이 빌붙을 리야... 옛날이라고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뭐 옛날이야기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그중 고려시대에 주연지라는 음양술사가 있다. 원래 이름은 최산보. 이름을 바꾼 거 보면 늘 그렇듯이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거다. 왠지 음양술사에는 주연지라는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음양술사라고 하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주로 무협이나 만화 같은 작품들에서 음양술사를 성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어서 인데 음양술사는 음양오행을 다루는 주술사로 보면 된다.. 더보기
가정제 신선이 되고 싶었던 명나라 세종 가정제는 명나라 11대 황제로 묘호는 세종이다. 하지만 가정제로 더 알려져 있다. 연호를 가정(嘉靖)으로 사용해서 가정제. 1507년 태어났고 21년에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했다. 우리나라에는 세종이라는 성군이 존재해 이미지가 좋지만 명의 세종은 대표적인 암군이었다. 가정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교에서 비롯되었다. 할아버지인 성화제가 도교를 신봉했는데 그도 못지않게 도교 추종자였다. 너무 신봉한 나머지 그는 스스로를 신선이라 칭했다. 정확히는 신선이 되고자 했다. 신선이 되기 위해 불사의 약을 만든다고 월경 혈과 아침이슬 등을 사용했다. 이 월경혈은 궁녀들로부터 채취했다. 그러면서 궁녀들을 학대하니 누구도 좋아할 리 없었다. 누군가 비위를 거슬리게 하면 사정없이 매를 때렸다. 학대를 견디다 못한 궁.. 더보기
두문불출 두문동 72인 이야기 '두문불출'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집안에만 있고 바깥 출입을 안 하는 것을 두문불출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자성어는 중국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더 유명하게 되었다. 두문불출의 원래 의미는 집 바깥을 안 나가는 것이 아니고 두문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두문동은 실제 동네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그러나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기슭이라는 설도 있다. 이곳에는 72현이라고 불리는 72명의 사람들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역사라 보기는 힘들고 야사에 가깝다. 고려가 태조 이성계에 의해 망하자 고려 유생들 중 72명이 두문동에 칩거하여 벼슬도 하지 않고 나오지 않았다. 이성계는 무신 출신으로 고려 왕조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더보기
흥선대원군이 된 파락호 이하응 조선 말기의 절대적 권력자 하면 흥선대원군이 떠오른다. 흥선대원군은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를 늦췄다는 원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도 같다. 또 하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파락호다. 파락호는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 말한다. 흥선대원군의 본명은 이하응. 하지만 흥선대원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차남인 어린 고종을 대신해 국정을 이끈 추존왕이다. 권력을 잡기 전에는 파락호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정도까지 막장 생활은 아니었다는 게 정설이다. 기방을 출입하다 욕을 당하고 상갓집의 개라고 불릴 정도였다는데 사실 이하응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의해 .. 더보기
정희량의 신선로 한국음식중에 신선로라고 있다. 전통 음식이다. 신선로(神仙爐)는 여러가지 어육과 채소를 담은 그릇에 육수를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어육과 채소는 그냥 한 그릇에 뭉퉁그려 담는 것이 아니고 색색별로 그릇을 빙 둘러 담는다. 모양자체가 고급스럽다. 옛날부터 잔칫날 만들어먹는 귀한 음식 중 하나다. 지금도 일반적인 음식점에서 먹는 것은 아니다. 보통 정부에서 외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할 때 자주 등장하고는 한다. 보통의 음식들이 유래를 알기 힘든데 반해 이 신선로는 그 유래가 자세히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고서인 [조선요리학]에 나와있다. 만든 사람도 명확히 알려져 있는데 신선로를 만든 사람은 연산군 시대의 '정희량'이라는 사람이다. 정희량은 무오사화를 겪고나서 속세를 떠났다. 선인생활을 하면서 화로를 .. 더보기
그동안 몰랐던 총포류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5가지 총포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조총을 들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으니 총기 사용이 얼마나 오래 된 건지 알 수 있다. 이 총기에 대해 역사적으로 혹은 현재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다. 총기류는 같은 방식으로 구동되는 포를 포함한다. 1. 기록된 최초의 총기는 약 700년 전인 1364년 사용되었다. 중세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우리는 빛나는 갑옷을 입은 중세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검이나 창을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조금 다르다. 총은 마치 현대의 발명품으로 여겨지지만 첫 총의 사용은 1364년 기록이 있다. 물론 중세시대의 총기는 오늘날 보는 총기와는 많이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