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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진실, 사건은 진짜일까?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만큼 유명한 왕은 아마도 의자왕일 것이다. 그것도 나쁜쪽으로. 의자왕하면 삼천궁녀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다. 이 의자왕의 삼천궁녀 사건은 진짜일까? 정말 의자왕은 호색한이었을까?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 그리고 이렇게 한 나라가 망하가 되면 그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 왕은 온갖 누명을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그러니 의자왕도 누명을 썼을 가능성이 많아지는데 놀랍게도 역사에 이런 기록은 없다. 왕의 칭호는 왕 사후에 사가들에 의해 붙여진다. 의자왕은 의자에 앉아 궁녀를 거느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었다는 뜻이다. 방탕스러운 생활을 한 색마로 알려진 의자왕이 왜 의롭고 자애로운 왕일까?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 의자왕은 실제 통치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에게 빼앗.. 더보기
세실 처브 스톤헨지를 낙찰받아 기부한 백만장자 영국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인 스톤헨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는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많은 방문객이 오고 있다. 스톤헨지는 선사시대의 유물로 이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운반해 왔는지 미스터리한 유물이기도 하다. 선사시대의 고인돌과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미스터리하다. 규모도 더 거대하고 둥근 형태로 배치가 되어있다. 왜 이런 형태로 만들었는지 어떤 가설도 명확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돌은 웨일즈에서 옮겨 왔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의 기술로는 옮겨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문화유적이지만 100년 전만 해도 개인 소유였다. 1915년 솔즈베리 경매에 나온 이 스톤헨지를 '세실 처브'라는 사람이 경매에서 낙찰을 받았다. 그는 부유한 변호사로 아내에게 선.. 더보기
루 살로메 지식인들의 뮤즈이자 하인베르크의 마녀 루 살로메, 본명 루 안드레아스살로메. 그녀는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였다. 하지만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건 저서나 연구성과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지성인 니체, 릴케, 프로이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지식인들의 뮤즈이자 연인이라는 점이다.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사귀게 되면 9개월 안에 명저를 남기게 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녀는 이러한 관심과 사랑을 즐기며 다양한 남자들과 교제했다. 이 교제는 반드시 육체적인 관계를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지적 욕구를 채우고 인문학적 관심사가 동일한 남자를 사귀기도 했으며, 이 경우 육체적인 관계는 거부했다. 자유로운 연애로 하인베르크의 마녀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고 스캔들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루 살로메, 니체, 레에의 기이한 동거 아버지가 러시.. 더보기
조나라 창후 한 집안과 한 나라를 망치다 조나라의 창후는 도양왕의 왕후이다. 원래 조나라 도읍인 한단의 창기였는데 도양왕의 눈에 들어 왕후가 되었다. 그녀는 일찍 출가하여 시댁을 온통 뒤집어 놓은 후 과부가 되었다. 시댁을 어떻게 뒤집어 놓았는지는 창후의 이야기가 나온 열녀전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음란하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으로 보아 그런 연유가 아닐지 생각된다. 도양왕이 창후의 미모에 반해 후궁으로 삼고자 했는데 무안군 이목이 간언을 했다. 이 여자는 이미 한 집안을 어지럽혀 놓았으니 이렇게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나라가 뒤집어진다고 하였다. 망하는 나라에도 이런 충신은 늘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나 도양왕은 나라의 문제는 자신이 정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며 근자감을 가지고 결국 창후를 왕후로 맞았다. 중국 드라마 속.. 더보기
비운의 대비 인목왕후와 철천지 원수 광해군 인목왕후는 광해군의 계모이다. 선조의 계비이므로 광해군의 어머니가 되었지만 광해군보다 나이가 9살이나 어리다. 인목왕후는 대비가 되었으나 인목대비가 아니라 소성대비가 맞는 표현이다. 후에 대비에서 폐위되고 인목왕후가 되었다. 선조와의 사이에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다. 드라마속 인목왕후 선조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광해군보다 영창대군을 더 총애했다. 광해군을 세자 자리에서 폐위시키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게 총애를 받다보니 인목왕후도 영창대군에게 세자처럼 차려입게 하는 등 광해군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어찌보면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는 행동이었는데 사실상 궁에 있을 사람이라기 보다는 평범하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광해군은 선조로부터 미움을 받는데다가 그렇게 행동하는.. 더보기
안용복 울릉도 독도가 우리땅 임을 확인 안용복은 부산 동래 사람으로 그곳에서 수군에 들어가 능로군으로 복무했다. 부산 왜관에 출입해 일본말을 잘했고 통역도 맡아 했다고 한다. 조선 숙종때인 1693년 동래어민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어업활동 중 그곳에 들어온 일본 어민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러다 일본인에게 붙들려 일본으로 잡혀갔다. 울릉도는 원래 우리땅이었지만 조선 정부는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을 육지로 데려오는 정책을 쓰고 있었다. 울릉도가 비자 일본 어부들이 마음대로 울릉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았다. 일본인들이 자꾸 침탈하면 이를 물리쳐야 하는데 섬을 놔두고 주민들을 데려오니 참 이상한 정책이었다. 안용복 동상 어쨌든 일본으로 끌려간 안용복은 호키주 태수와 에도 막부에게 올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이니 어업을 금지하라.. 더보기
얀 카르스키 홀로코스트를 세상에 알리다 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진 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참상을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이 있다. 바로 폴란드인 '얀 카르스키'. 그는 2차대전 당시 폴란드의 저항운동 단체인 지하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머리가 좋아 폴란드의 망명정부와 지하운동 간 특사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1940년 그는 임무 수행도중 독일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지만 다행이 구출되어 폴란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거기서 탈출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얀 카르스키1942년 독일은 유대인들을 바르샤바 게토에서 트레블리카 수용소로 강제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얀 카르스키는 바르샤바 게토로 가서 유대인들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다 더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기.. 더보기
진나라 한무제와 무사황후 위자부 진나라의 한무제는 아주 소문난 바람둥이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는데 왕이니까 그렇다 치고. 그 여인들의 결말이 좋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무제와 무사황후 위자부의 이야기도 그렇다. 위자부는 몸종에서 황후가 된 케이스로 역시 그로 인해 온가족이 권력을 누렸지만 역시 결말이 좋지 못하다. 하루는 무제가 누이인 평양공주의 집에 갔다. 거기서 평양공주의 노비인 위자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는 집 화장실에서 관계를 맺었고(물론 권력에 의한 강압이겠지) 이를 안 평양공주는 무제에게 위자부를 내줬다. 한무제 무제는 위자부를 후궁으로 삼았는데 황후였던 진아교는 질투에 위자부를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무제는 진아교의 덕에 황제가 된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안되는 법. 위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