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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북송의 유아 중국 최초의 수렴청정 황태후

중국역사에서는 여러 황후들이 수렴청정을 했는데 가장 처음으로 한 황후가 북송의 장헌명숙황후다. 이름은 유아. 유황후라고도 부른다. 보통 수렴청정하면 외척과 권력욕 등이 얽혀 안좋은 경우가 많은데 유아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황후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고 정치도 잘했다.


장헌명숙황후

유아는 먹을 거리를 걱정할 정도의 가난한 집의 아이였다. 하지만 천한 집안은 아니었고 벼슬을 지냈지만 쇠락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유아는 총명하고 기민한 아이였고 예쁘게 성장했다. 유아는 전쟁 통에 북을 치며 기예로 먹고 살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 대장장이 공미를 만났고 같이 수도인 개봉으로 갔다.



유아는 여기서도 기예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는데 양왕 조항(후에 송진종)은 유아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예쁘고 총명한 유아에게 조항은 푹 빠졌다. 그러나 유모인 진국부인은 천한 유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송태종에게 말해 유아를 쫓아내게 했다. 이미 유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조항은 유아를 장기의 집에 숨겨두고 몰래 만났다.


중국미인도 유아


조항은 집안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지만 유아를 잊지는 못했다. 계속 유아를 만나 사랑을 나눴다. 유아는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장기의 집에서 조항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러니 조항이 어떻게 유아를 잊을 수 있을까? 둘의 관계는 더욱 애뜻해졌다.



후에 조항이 진종으로 즉위했고 유아를 데려와 귀비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것도 반대에 부딛혀 품계가 낮은 미인에 봉해진다. 이때까지 유아가 기다린 세월이 15년이었다. 끈기 있게 참고 인내한 것이다. 후에 황후가 죽자 진종은 다시 유아를 황후에 봉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출신이 비천하다며 많은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드라마 속 유황후


유아는 여기서 지금까지 기다려온 세월을 보상받을 꾀를 내었다. 진종의 후사가 없는 것에 자신의 궁녀인 이씨(후에 장의황후)를 진종에게 보내 동침하게 했다. 이씨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아들을 낳았다. 유아는 크게 기뻐하며 이씨의 아이를 자기 것으로 한다. 진종도 이를 받아들였고 유아를 황후에 책봉했다. 이때 유아의 나이 37이었다. 훨씬 젊고 예쁜 여자들도 많았지만 송진종의 유아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았던 것이다.



2년 뒤 진종이 병으로 죽고 아들 인종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 진종의 유언에 따라 황태후인 유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권력을 손에 쥐니 유아는 자신에게 모질게 대했던 사람들을 단죄했다. 그렇다고 권력을 모질게 휘두른건 아니다. 그녀는 하층민 출신이라 하층민의 상황을 잘 이해했다. 하층민이 겪는 불필요한 노역과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선정을 펼쳤다. 그리고 친아들은 아니지만 인종과의 관계도 돈독히 하고 교육도 잘 시켜 후에 통치를 잘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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