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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후한 화희황후 착한 여자의 착한 정치

화희황후는 후한 화제의 두번째 황후다. 후한 왕조에서 임조칭체한 두번째 황태후다. 임조칭제는 황제의 명령과 같이 황태후의 명령을 제로 칭한다는 의미로 황제의 권력을 누리는 통치행위이다. 수렴청정이나 섭정과 동일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화희황후의 성은 등씨 이름은 '수'이다. 어린나이에 총명하고 유학에 관심을 보였다. 미색이 출중하여 궁에 들어가제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성품이 겸손하고 공손하며 행동을 늘 조심했다. 원래 화제황후 음씨는 이런 등수를 질투하여 무고하고 저주했다. 그로 인해 오히려 황제의 미움을 샀고 쫓겨나는 통에 등수가 황후가 되었다.



등수가 다섯 살 때 이런 일화가 있다. 태부의 부인이 그녀를 사랑해서 몸소 머리카락을 잘라 주는데 눈이 어두워 등수의 이마를 다치게 했다. 하지만 등수는 고통을 참고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를 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서 묻자 등수는 태부인이 저를 위해 머리를 잘라준건데 어르신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워 아파도 참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심성이 깊었는데 한 관상쟁이가 탕 임금의 관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가장 큰 원인은 화희황후의 성정일 것이다. 등수는 궁궐안에 들어서도 행동거지를 조심했고 아랫사람을 존중했으며 황제를 극진히 생각했다. 그러니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에는 황후가 되었고 화제가 죽은 후 태어난 지 100일밖에 안된 상제가 즉위했다. 그로인해 황태후가 되어 임조창제를 하였다. 상제가 1년뒤 죽고 다시 제위에 안제를 옹립해 계속 통치행위를 했다. 유학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어 정치잘 해나갔다. 외척들을 경계했고 재물을 아끼며 덕정을 했다.


중국 드라마 속 화희황후


하지만 욕심이 조금 과한 면도 있다. 황제의 권능을 침해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역대 황제들을 모신 태묘의 제례를 본인 주도로 하기도 했고, 자신의 조서로 사면령을 발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황제가 어려서 그랬다지만 자신의 명이 아닌 황제의 명으로 했어야 했다. 자신의 친족인 등씨에 대한 통제를 했으며 황족인 유씨에 대해서도 통제를 했다. 이로 인해 황실이 안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황제를 대신해 정치를 하게 되면 타락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많은데 화희황후는 천성이 착해서 그런지 정치도 착했다. 약 17년간 임조칭제하고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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