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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태조 이성계 왜 내시 이만과 세자 빈 현빈 유씨를 내쳤나

태조 2년. 태조 이성계는 내시 이만을 죽이고 세자 빈이었던 현빈 유씨를 쫓아낸 일이 있다. 내시 이만의 목을 칠 정도로 중했던 사건은 이만과 현빈 유씨의 간통때문이었다. 이를 조선최초의 궁중스캔들로 보는데 현빈 유씨는 태조가 세자로 삼았던 의안대군의 빈이다. 태조의 아들은 8명이었는데 다 제쳐두고 8번째 아들인 의안대군 이방석을 세자로 삼은 건 이성계가 신덕왕후를 아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이 왕위를 찬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태조가 11세에 불과한 의안대군을 세자로 삼은 건 신덕왕후의 소생이라 더욱 아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며느리도 그만큼 아꼈을텐데 그럼에도 현빈 유씨를 궁에서 쫓아내버렸다. 불륜을 일으킨 이만은 목이 달아날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현빈 유씨는 의안대군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로 인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이만과 관계했을거라고 추측되고 있다.



남자구실을 못하는 내시가 빈과 사랑을 나눴다는 것도 황당한데 더 황당한 일은 이를 벌한 이성계에게 이 일에 대해 자세한 이유를 밝혀 사람들의 의심을 없애달라는 상소를 올린 신하들을 옥에 가둔 것이다. 그것도 크게 격노하여 신하들을 가둬 버렸다. 궁궐 내의 불미스러운 일이라 떠벌리기 무안하여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민감한 반응이다.


<내시와 빈의 사랑이라...>


이미 소문은 다 났고 이에 대해 소상히 밝혀달라는 상소였을 뿐인데 이렇게 행동한 것은 어쩌면 태조 이성계가 관계되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이만과 현빈 유씨만의 관계가 아니라 태조 이성계까지 껴 있는 삼각관계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하들이 이를 자꾸 공론화시켜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벌을 내렸던 신하들은 모두 훈방조치 되기는 했지만 납득이 안가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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