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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 티움/영화 이야기

영화 아무르 뜻과 결말의 무거움, 39금 영화정도 되려나...

사랑이란...

프랑스 영화 아무르. 아무르의 뜻은 프랑스어로 사랑이다. 포스터를 보고 제목을 본다면 노년 부부의 사랑이야기, 로맨스 정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이해한 이 영화는 결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과 죽음, 삶보다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느끼게 되는 그 무게, 주변 사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사랑을 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계속 지켜보는 것과, 그 고통을 볼 수 없는 것 어떤 게 더 사랑하는 걸까?

 

 

<남편의 얼굴이 나오는 시점도 있는데 그것보다 이 장면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한 39금 영화정도 될 거다. 이 정도의 무게를 느끼려면 본인이 노년이거나 적어도 부모님이 노년에 이르거나 해야 한다. 그러니 이 정도 나이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 전혀 감상적인 멜로가 아니므로 노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기대하고 본다면 크게 실망할지 모른다. 영화 또한 굉장히 지루하다. 그래도 보게 된다면 당신은 이 이야기에 공감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거다.

 

 

영화의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랄 만큼 슬픔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안타깝지만 평온한 일상이었는데 공포영화처럼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 뉴스를 장식하고는 한다. 누가 여기에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문득문득 떠오를 어떤 영화'라고 평했다. 그 말이 딱 맞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각이 날 것 같다. 젊어서는 알 수 없을 감성. 젊어서 이 감성을 가지려면 이미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이런 일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참 슬픈 세컷>

이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노화와 질병, 죽음 앞에 숭고한 사랑은 참 덧없다. 어떤 결과라도 숭고하지만 어떤 결과여도 고통스럽다. 나는 여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 아름답다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이건 그냥 삶에서 겪는 고통이다. 이걸 누가 해결해야 할까? 차라리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는 스위스가 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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