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경주김씨를 신라의 왕족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신라의 왕족은 박, 석, 김으로 변했다. 신라의 왕족이 석씨에서 김씨로 바뀌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여인이 옥모태후다. 김옥모. 옥모태후는 신라 12번째 임금인 첨해이사금의 어머니로 그 형인 조분이사금을 포함 두 아들이 모두 신라의 왕이 된 권력자였다.
이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중 가장 약한 때로 백제와 왜로부터 압박을 받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위험한 시기였다. 신라는 고구려와 잘 지낼 필요가 있었다. 이에 첨해는 자신의 누이인 월정을 고구려에 후궁으로 보냈다. 월정은 그리 예쁘지는 않았나보다. 중천왕은 월정을 차와 술을 시중드는 궁인으로 삼았다.
후에 첨해와 옥모태후가 국경에 인사를 하러 왔을 때 마중나온 중천왕은 옥모태후에 한눈에 반한다. 옥모태후의 미모가 뛰어난 듯 싶다. 사흘간 연회를 베풀고 옥모에게 많은 선물을 하사했다. 신라로 돌아온 와중에도 중천태왕은 옥모태후를 잊지 못했다. 수시로 선물을 보내 교류를 했다.
일반적인 사위와 장모의 만남이 아니야...
태후는 애국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처세술이 좋은 건지 중천을 구워삶아 월정을 후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했다. 아마도 옥모태후는 중천왕이 여색을 즐긴다는 것을 알았을지 모르겠다. (하단 중천태왕과 관나부인 사건에 대한 포스팅을 참고바람) 이렇게 태후는 밖으로는 고구려, 안에서는 첨해를 등에 업고 권력의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천태왕과 옥모태후의 관계를 끝나지 않았다. 둘의 사랑은 더욱 각별해졌다. 옥모는 고구려로 가 중천태왕과 사랑을 즐겼다. 같이 사냥을 다니고 연회를 즐겼다. 그러니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는 더욱 각별해졌다. 백제 고이왕이 신라를 침입하려하자 중천왕은 군사를 내어 백제를 물리쳤다.
이쯤되면 막 나가는거다
그러나 중천왕은 엄연히 태후가 있는 몸. 옥모태후가 고구려에 계속 머물수는 없었다. 옥모는 신라로 가 연회를 열고 중천왕을 부르려 했으나 중천왕의 왕후인 전태후가 이를 크게 반대하였다. 어쩔 수 없이 신라로 가지 못하고 중천은 훗날을 기약했다.
김씨왕조의 시작
신라의 왕인 첨해가 죽자 옥모태후는 자신의 동생인 미추를 왕위에 올렸다. 신라에 김씨왕조가 열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고구려를 등에 업고 있는 옥모태후의 결정을 반대할 수는 없었다. 후에 옥모태후는 태자 단을 낳았다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왕후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남아있는 신라의 또다른 시조 미추왕릉
사실 그 당시 신라는 삼국, 가야까지 하면 4국 중 가장 약했던 나라로 고구려와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백제에 흡수되었을 수도 있는 나라였다. 신라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을 잡은 것은 어쩌면 옥모태후의 처세술 덕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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