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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스포츠 상식 티움/정치

315 의거 그리고 부정선거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3월 하면 떠오르는 날은 3.1절. 하지만 3월에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인 시민봉기가 있었다. 바로 315 의거. 근현대사에 일어났던 수많은 민주화 운동 중 하나다. 자유당 때라고 하는 이승만 정권하에 벌어진 부정선거에 시민들이 항의한 민중봉기다. 전국적인 부정선거가 포착되었고 이에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를 했는데 경찰이 총기를 발포했다. 전국적인 시위 가운데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벌어진 시위가 가장 유명했고 3.15 마산 의거라고도 한다.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이유는 장군동 제1투표소 사건때문이었다. 민주당 참관인과 자유 당원 사이에 실랑이가 새겼는데 참관인이 투표함을 엎어버렸다. 그런데 그 투표함에서 부정선거 정황이 나온 것. 부정은 사전투표로 이루어졌다.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 미리 이름을 적어놓고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것. 하지만 이를 발견한 참관인 안맹선과 그의 남편인 경상남도의회 민주당 의원 정남규가 경찰서에 끌려가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과감한 투표함 바꿔치기>

 

이에 민주당원들을 선거를 포기하고 당원 시민들 1500여명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정권의 꼬붕 경찰들이 들이닥쳐 민주당원들을 연행하고 이 과정에서 곤봉으로 고등학생을 폭행했다. 군중들이 더욱 분노하여 시위를 했는데 반공청년단들이 무자비하게 이들을 진압했다. 이때 정치깡패가 동원이 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실제 그 시대에 이승만 정권은 정치깡패를 많이 동원했었다. 지들 하는 짓도 깡패였고.   

 

<315 의거 기념탑>

 

 

저녁에 다시 마산시청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는데 만명이 넘을 정도였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총질을 했는데 이 발포로 사망자가 나왔다. 시위대는 관공서, 경찰서, 자유당사를 습격했다. 이 315 의거로 9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에 대해 국회조사단이 이승만에게 따져 묻자 발표한다는 것이 공산당의 사주로 벌어진 일이라고 한 것이다. 너무 뻔하다. 그놈의 빨갱이 타령. 여전히 그 피를 이어받은 것들이 똑같은 타령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부통령인 이기붕은 한 술 더 떠 "총은 쏘라고 줬지 갖고 놀라고 준 게 아니다"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짓걸였다. 평화시위를 하는 자국민에게 총을 발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어이없는 행태였다. 이런 것들이 대통령 입네 부통령 입네 하던 것이 불과 몇십 년 전이었고 또 십수 년 전에도 같은 마인드의 정권이 있었다. 이들은 부정선거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었고 자신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개들이 주인을 위해 알아서 긴 거지.

 

 

여론이 악화되자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패턴을 시전 했는데 공산당의 사주라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희생양을 찾았다. 그가 바로 민주당의 정남규 도의원이다. 공산당원으로 총지휘를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또 한 청년을 체포했고 그가 경찰서를 방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6.25 때 공산당에 부역한 경력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청년의 나이는 22살이었고 6.25 때는 불과 12살. 사람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비난하자. 청년의 나이를 급 10살 올려 32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청년은 그냥 길가다 체포된 억울한 시민이었다.

 

<사임보다 시민의 손으로 끌어내려졌어야 하는데...>

 

3.15 의거는 마산이 가장 유명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고 광주에서도 꽤 크게 일어났다. 광주에서도 10여 명이 부상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의거를 시작으로 시위가 이어져 4.19 혁명으로 발전했다. 4.19 혁명은 결국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승만을 끌어내렸다. 그래서 4.19 의거는 유명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반해 3.15 의거는 조금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3.15 의거는 4.19 혁명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위였다.

 

<요즘엔 3.15 기념식도 한다>

 

보수정권하에서 선거철만 되면 부정선거의 정황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는 했다. 그 DNA는 어디 가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의 눈'처럼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서 조직을 만들고 감시하는 일들이 생겼고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정권창출에 시민의 눈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들이 선관위에 항의하고 요구하고 밤새우며 투표함을 지킨 덕에 부정선거를 마음 놓고 할 수 없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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