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가끔씩 터미널에 갇혀있다
영화 터미널. 톰 행크스, 무엇보다 캐서린 제타존스 주역의 영화다. 물론 톰 행크스가 이야기의 주다. 프랑스 공항에서 있었던 이란인 메르한 카르미 나세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실화는 영화보다 훨씬 더 오래 공항 터미널에 머물렀다. 무려 18년. 하지만 모티브를 얻었을 뿐 실화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딱 스티븐 스필버그 감성으로 만든 영화. 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아동스럽지는 않고 감동이 있고 주인공 빅터를 영화 보는 내내 응원하며 보게 된다.
이런류의 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장르가 아니라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선악 대결을 통해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주는 것이 문학의 기본인데 안 그런 작품들이 종종 있다. 물론 여기에 주인공 빅터를 적대시하는 인물이 나오기는 한다. 공항의 보안국장 프랭크 딕슨. 그러나 그도 진정한 악인은 아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골칫거리인 빅터를 몰아내려 하지만 그리 악랄하지는 않다.
빅터가 미국을 방문한 이유부터 상황, 결말까지 모두가 동화스럽다. 그러나 실화처럼 몰입이 된다. 빅터에 감정이입이 되고 내가 경험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톰 행크스의 연기. 그가 연기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된다. 심각한 연기, 코미디 연기 모두 가능한 그는 이런 어리숙한 듯 하면서도 진지한 연기가 너무 잘 어울린다(다른 연기도 잘하기는 하지만...). 빅과 포레스트검프에서와 같은 캐릭터.
심각한 선악대결이 없어서 그런지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하다. 마치 밥을 먹는 듯한. 곱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곱씹어 볼수록 생각이 들게 만들고 다시 보면 더 좋다. 이런류의 영화들은 세월이 지나서 보면 더 빠져들고 생각할게 많아진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른 맛으로 다가오는 영화.
또 하나의 볼거리는 역시 캐서린 제타존스. 다만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 캐서린 제타존스는 전혀 섹시하게 나오지 않으니 그걸 기대하면 안된다. 그냥 여자여자하고 예쁜 캐릭터. 빅터가 사랑에 빠지는게 이해가 간다. 결국 빅터는 갈 곳을 잃었지만 터미널에서 인간관계도 하고,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한다. 그러니 터미널에 갇혀 갈 곳을 잃어도 희망을 가지시라 삶은 어디에서든 계속된다. 인생이 극적인 것은 새로운 일들이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든... 그걸 우리가 못 찾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