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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진성여왕과 숙부 위홍의 위험한 관계

진성여왕은 신라의 세번째 여왕이다. 신라는 근친혼때문에 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진성여왕도 그런 경우로 신라 50대 왕인 정강왕은 자식이 없었다. 이에 여동생에게 왕위를 넘겼는데 이가 진성여왕이다. 진성여왕은 위험한 사랑을 했는데 바로 숙부인 위홍이었다. 사실 숙부와 사랑을 한다는 건 신라에서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근친혼을 권장했기때문이다. 하지만 위홍은 엄연히 부인이 있는 유부남. 그래서 문제가 된다. 다른 편에서는 부인이 사망 한 뒤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드라마 태조왕건의 진성여왕과 위홍


진성여왕은 여왕답지 못하게 밤마다 궁녀 복장을 하고 궁을 빠져 나갔다. 바로 위홍을 만나기 위해서다. 나이는 스무살도 넘게 차이가 났다. 진성여왕이 전임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과 달리 나라를 말아먹은 여왕으로 뒷말이 나오는 이유도 음란함이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위홍과의 관계를 빼고는 그다지 문란한 생활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여자라는 이유로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온다.


위홍이 죽은 후에 진성여왕은 미소년을 궁으로 들여 같이 지냈는데 이것을 두고도 음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일국의 왕이었고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다만 그들에게만 신경쓰고 요직을 맡기는 등 국정을 막 한건 문제다. 왕들도 후궁을 몇명씩 들이는데 여왕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욕을 먹는 것은 진성여왕때에 통일신라가 끝나고 후삼국 시대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위홍과 사랑을 나눴음에도 진성여왕만 유독 탓하는 것도 우습다. 만약 현대에 그랬으면 위홍이 유부남이었으므로 위홍이 더 욕을 먹어야 하는데 진성여왕이 더 욕을 먹는다. 이는 역사가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는 이전 국가의 멸망 이유를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니 진성여왕을 더 나쁘게 이야기 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나 책임을 지고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 책임지는 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숙부와의 관계라 하고 궁을 나갔다고 하니 은밀한 내통이었다 생각되겠지만 사실 진성여왕와 위홍은 공식적인 관계였다. 주변에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위홍의 부인이 사망한 뒤에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인연을 맺은 뒤 위홍은 마치 남편처럼 행세했다. 궁궐을 드나들며 일을 봤고 궁에서 권세도 있었다.


영화 천년호의 진서여왕 골격이 장부와 같다니 이런 모습이 맞을지도...


그렇다면 혹시? 개인적인 생각으로 위홍이 권세를 누리기 위해 진성여왕에게 접근한 건 아닐까? 당연히 근친상간이 일상화 되던 시대이니 거부감도 없었을 것이고. 역사 기록에는 진성여왕이 골격이 흡사 장부와 같다고 한 걸로 보아 그렇게 미모가 출중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위홍 같은 성골이 관계를 가진 걸 보면 의도적인 접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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