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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숙명공주(황후)와 이화랑의 숙명같은 사랑

숙명공주는 이사부와 지소태후 사이에 난 딸이다. 지소태후의 아들에는 진흥왕이 있다. 숙명공주의 오빠. 그런데 아버지가 다르다고 한다. 화랑세기의 내용인데 화랑세기가 위서 논란이 있어 야사 정도일지도... 어쨌거나 숙명공주는 시대가 나은 불운한 여성상을 보여주는데 그건 바로 오빠인 진흥왕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화랑의 숙명공주>

아버지가 달라도 오빠인데 이는 지소태후의 입김때문이다. 신라는 정통 성골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중에 성골이 사라진 이유는 근친으로 인한 유전병때문으로 생각된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다. 그걸 몰랐으니 피가 섞이는 것을 우려해 성골끼리 결혼을 시켰다. 그래서 지소태후가 진흥왕과 결혼을 시켰는데 그래도 어렸을적부터 같이 자라온 남매일텐데 무슨 사랑이 있을리가...더군다나 숙명공주는 왕후가 되기전에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드라마 화랑의 지소태후>


숙명황후가 사랑했던 사람은 이화랑. 문제는 진흥왕과 결혼한 후에도 이화랑과 사통을 계속했다. 진흥완은 이를 알고도 묵인해 주었다. 진흥왕도 여동생과의 결혼이 그렇게 탐탁치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숙명은 지소태후의 사랑을 받았다. 지소태후는 진흥왕이 어렸을 때 섭정을 했던 궁의 권력자다. 


숙명은 진흥왕과의 사이에서 아들 정숙을 낳았다. 그리고 지소태후의 애정을 듬뿍 받은 탓에 정숙이 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숙명과 이화랑의 애정행각은 지소태후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더 황당한건 사실 이화랑이 지소태후의 남자였다는 것이다. 뭐 이런 콩가루가... 숙명황후는 더이상 궁에 머물수가 없었다. 결국 이화랑과 함께 도망을 쳤다.



진흥왕은 왕후자리에서 퇴출되었고 태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태자는 혈통을 의심받았다. 진흥왕의 아들인지 이화랑의 아들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택하기는 했지만 자신과 이화랑, 아들까지 모두 앞날이 캄캄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원래 숙명과 화랑은 제자와 스승으로 만남. 물론 검술은 아니고 글공부>


그러나 숙명공주를 옹호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단 지소태후도 워낙에 숙명을 예뻐했었고 진흥왕도 연민을 가지고 있었고 가장 큰 건 진흥왕의 다른 비 사도왕후가 숙명의 폐비로 자신의 아들이 태자로 옹립되었기때문에 숙명과 이화랑을 옹호했다. 결국 용서받아 두 사람은 정식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고 이화랑과의 사이에서 원광과 보리를 낳았다. 말년에는 이화랑과 함께 영흥사로 들어가 불도를 닦으며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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