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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고구려 우왕후 시동생과의 혼인으로 권력을 유지하다

고구려 우왕후는 고구려 9대 왕인 고국천왕의 왕후다.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성도 우가 아니다. 우수의 딸이라는 의미로 우왕후라 붙였는데 우수의 성이 우가 아니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우왕후가 유명한 건 고국천왕의 동생 산상왕, 즉 시동생과 결혼을 했기때문이다.


우왕후가 형과 결혼했다가 시동생과 혼인을 한 건 일종의 풍습이었지만 우왕후는 단순히 풍습만으로 혼인을 한 것은 아니다. 그녀의 권력 의지가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원칙대로라면 우왕후는 고국천왕의 첫번째 동생인 발기와 결혼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우왕후는 나름대로 권력욕도 있고 머리도 잘 돌아갔던 것 같다.



우왕후는 발기가 자신에게 도움이 안되는 인물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둘째 시동생인 연우를 선택했다. 고국천왕이 죽자 죽음을 비밀로 하고 야밤에 우왕후는 첫째 시동생인 발기를 찾아갔다. 우왕후는 태자를 낳지 못해 후사를 이을 수 없었다. 당연히 왕위는 동생에게 돌아갈 참이다.


<남편이 죽었는데 바로 시동생을 찾아간 우왕후>


우왕후가 그걸 판단해 발기를 찾아가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했으나 발기는 추진력이 없고 상황판단을 잘 못하는 인물이었나보다. 오히려 우왕후가 야밤에 찾아왔다고 호통을 쳤다. 망신을 당한 우왕후는 둘째 시동생 연우를 찾아가 술자리를 갖고 꼬드겼다. 다음날 선왕의 유지라며 연우를 왕위로 섬겨야 한다며 거짓 발표를 했다. 이로 인해 연우가 고구려의 10대 산상왕으로 즉위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발기는 군사를 일으켜 왕궁을 포위했다. 그러나 이미 왕이 된 연우를 공격하는 것이라 발기는 일종의 반란이 되어버렸다. 그는 요동으로 도망가 요동태수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리고는 군사를 빌려 고구려를 공격했다. 이제 발기는 역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산상왕은 아우 계수에게 군사를 내어 이를 막게 했다. 그러나 큰형인 발기를 감히 죽이지는 못하고 나라를 공격한 것에 대해 책망했다. 발기는 이를 듣고 부끄러움에 도망치다 스스로 자결을 했다. 계수는 슬퍼하며 발기의 시체를 거두어 임시로 장례를 치뤄줬다.



한편 시동생과 혼인하여 왕후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 우왕후는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인지 산상왕과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후사를 낳지 못하면 그 당시 왕후로서는 자격이 없다. 오히려 첩이 자식을 낳게 되는 경우 왕후가 바뀌기도 한다. 


<두번 국모가 된 대단한 우왕후>


이렇게 되자 산상왕은 주통촌의 여자와 사통을 해 아이를 갖게 되었다. 우왕후는 질투로 주통촌의 여자를 죽이려 했으나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아이를 낳도록 했다. 이 아들이 후에 동천왕으로 즉위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동천왕이 오른 후에 태후는 친모가 아닌 우왕후가 태후가 되었다. 아무래도 2대에 걸쳐 왕후인 까닭에 친인척과 함께 많은 권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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