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 형무소 앞에 있는 독립문은 서재필의 주도로 만든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조선말 만들어졌는데 프랑스의 개선문을 모델로 삼아 디자인 된 건축양식으로 우리나라 건축사에서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기때문에 사적 32호로 지정되었다.
독립문은 지금 서대문 형무소를 마주 보고 있는 위치의 특성과 이름으로 인해 마치 일제시대 대한민국 독립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것처럼 오해를 사고 있지만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상식적으로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면 일본이 가만히 놔뒀을리가...
앞쪽 기둥이 영은문 기둥
원래 위치는 이곳에서 70여미터 떨어진 곳인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졌다. 영은문을 헐고 그 약간 앞쪽에 만들어졌는데 영은문은 명의 사신을 맞는 자리였다. 이름도 맞을 영(迎)에 은혜 은(恩)을 쓰는 개X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 은(恩)자 대신에 조서 조(詔)를 적어 이름 지었는데 명의 요구로 은자로 바뀌었다. 뒤에 중국의 명이 청으로 바뀐 뒤 그 기능이 계속되었다. 사신을 맞는 것이 아니라 대국의 은혜를 받는 문이었던 것이다.
철거되기전 영은문 모습
1890년대에 개화파인 서재필은 청의 사신을 맞는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자고 주장했다. 이는 청에서 조선의 왕을 책봉하는 사실상 속국인 형태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국임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는 건축물이다. 이것을 1979년 성산대로 공사를 위해 원래의 위치에서 이전되었으니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토목공사를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도 무시해버리는 속물근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독립문의 원래의 의미를 일어버린 이전도 문제지만 독립문의 현판이 이완용이 쓴것이라는 것이 밝혀져 더 문제가 되었다. 1999년 육덕한의 저서인 '이완용평전'에 의하면, 독립문 상단에 앞뒤로 각각 한자와 한글로 독립문이라고 세겨놓은 글씨가 이완용이 글씨임이 확실하다고 했다.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은 당대 명필인 문신이었다. 그의 글씨체는 굵고 힘있는 글씨였는데 여러 건축물의 현판을 쓴 이력이 있다. 당시 독립협회 발기인이었고 보조금을 가장 많이 냈으며 위원장으로 독립문 건립사업을 주도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동농 김가진 선생 가족사진
지금까지 독립문의 글씨는 동농 김가진이 쓴 것이라 알려져 있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현재 김가진의 후손은 독립문의 글씨를 김가진이 쓴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이완용이 썼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몇몇 서예가들도 이완용의 글씨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한 사료가 없는 실정이다.
불멸의 매국노 이완용. 이놈이 독립문 현판을 썼다니...하....
현재 가장 오래된 자료는 1924년 7월 15일 발행된 동아일보에 실린 연재물의 내용이다. 여기에는 독립문이 서재필의 주창으로 세워졌으며 위에 있는 독립문이라는 글자는 이완용이 쓴 글자라고 나와있다. 독립문이 세워진 후 좀 뒤에 쓰여진 글이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오래된 사료고 독립문의 글자 작성자를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다.
독립문 글씨가 이완용것임을 적은 동아일보 연재물
우리가 독립국가임을 상징하는 독립문의 글자가 우리나라 매국의 대명사인 이완용의 작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지 독립문에 대한 자료에는 여전히 김가진의 글씨라고 되어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는 이상은, 안타깝게도 독립문이 이완용이 글씨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 현판을 어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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