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동주. 우리가 잘 알고 있고 학창시절에 배웠던 윤동주에 삶과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음악을 다룬 잘 만든 영화를 보면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했구나 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시도 시각적으로 표현된다는 생각을 했다.
익히 들었던 시들. 유명한 시도 있고 처음 듣는 시도 있고 어릴적 읽었던 시들도 있다. 그 시들이 영화속에서 나올 때 왠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영화도 흑백으로 만들어 더욱 그런 감정이 든다. 그러나 동주는 추억에 젖을 영화가 아닌 가슴아픈 민족사에 대한 영화다.
학창시절 교과서에는 일제시대를 살았던 많은 시인들의 시들이 실려있었다. 그 시들을 배우고 외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변절자라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정권이 바뀌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진상조사가 있고 나서야 밝혀진 것이지 친일파들이 계속 정권을 이어온 나라에서 사실상 밝혀지기 힘든 일들이었다. 잠깐 시간이나마 밝혀질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 가운데 변절하지 않고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 별처럼 빛나는 윤동주. 시도 빛나지만 그의 인생도 영화 동주를 통해 재조명되고 빛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는 아니다. 삶과 시가 중심. 영화를 보는 중에도 시를 읽는 나래이션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을 감아보게 된다.
영화를 통해 송몽규라는 인물도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시를 쓰는 것과 나라 잃은 시대상황에서 나라를 위하는 것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이의 심정.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나보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들이 나오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은 정서의 시들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각색이지만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그런지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억지 신파도 없어서 좋았다. 그저 시처럼 담담하고 잔잔하게 감동을 전해줄 뿐이다. 그로 인해 자막이 끝날때까지 보게 되는 영화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이 왜 영화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짓지 않았을까? 부제라도 넣을 만한데.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이 딱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부제로라도... 뭔가 감독의 의도가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