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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안병하 경무관 시민을 지킨 진짜 경찰

조직사회에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기란 힘든 일이다. 특히 그 조직이 군이나 경찰, 공무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당하고 비윤리적인 명령이라도 그것을 거부했다가는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어서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그런 것 같다. 부당함에 저항할 수록 비참해진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지금의 이 사단을 만들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시민을 때려잡고 정권의 개가 되어 견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있는 요즘이지만 불과 몇 십년 전 시민을 보호한 진짜 경찰이 있었다. 고(故) 안병하 경무관이다. 안병하 경무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경찰국장이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1968년에는 남파 간첩선을 타고 침투한 북한 무장 공비를 소탕한 공로로 중앙정보부장의 표창과 녹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한 반공정신 애국자였다. 만일 그가 신군부의 편에 섰다면 편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빨갱이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금 정권의 마음에 안들면 종북 빨갱이라고 몰아 세우는 것은 그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이 자국민을 때려잡던 시절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때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계엄 하에서 부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신군부는 무력으로 강경진압을 하며 시민들을 죽일 것을 서슴없이 명령했다. 그러나 안병하 경무관은 경찰들에게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오히려 잔인한 폭력진압을 당하는 시민들을 돕고 편의를 제공했다.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해주고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했다.



이렇게 되자 역시나 정권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안병하 경무관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는 강제 해임이 되었고 보안사에 끌려갔다. 고문이 당연시 되었던 그때라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보안사 동분고 분실에서 10여일간이나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을 앓다가 1988년 돌아가셨다.


수많은 사람이 자국 군인의 손에 의해 죽었다


그는 돌아가시기 전 신군부에 동조하지 않은 자신의 판단이 옳은 일이며, 언젠가 역사가 자신을 알아줄것이고, 가족들이 국립묘지로 자신을 반기러 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씀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안병하 경무관의 명예는 복권되었고 2005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지금보다 더 서슬퍼런 시대에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경찰이었다. 지금 수많은 경찰들이 시민을 상대로 부당한 짓을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으로 봐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더욱 위대한 경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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