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폭군하면 연산군, 그보다 앞선 시대에 고구려에도 폭군이 존재했다. 고구려의 14대 왕인 봉상왕이다. 보통 왕은 최악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긍정적인 기록을 하는데 비해 봉상왕은 어려서부터 교만하고 방탕했으며 의심과 시기가 많았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봉상왕 상상도
기록된 성품처럼 봉사왕은 고구려의 내부에서 반역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항상 친족들을 경계하고 의심했다. 이는 고구려의 상속이 형제 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됨에 따라 할아버지와 아버지대에 모두 동생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보고 자랐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봉상왕은 결국 자신의 숙부 달가와 동생 돌고를 죽였다. 내부적으로 권력다툼이 있더라도 백성을 돌보면 되겠지만 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도 궁궐을 크게 증축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 궁궐증축은 폭군들의 기본 중 기본이다.
늘 그렇듯이 폭군 곁에도 충신이 있어 창조리라는 신하가 간언을 했지만 봉상왕은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창조리를 꾸짖었다. 창조리는 봉상왕이 가망이 없음을 알고 정변을 일으켜 폐위시켰다. 이를 보면 아주 충신은 아니었을지도... 봉상왕은 후에 자신의 아들과 함께 자살을 했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켰던 창조리가 살해했거나 자살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창조리는 숨어살고 있던 봉상왕 동생의 아들 을불을 왕으로 앉힌다. 그가 미천왕이다.
그러나 봉상왕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 역사가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점에서 사실은 폭군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숙부가 외적을 격퇴하며 백성들의 영웅이 되자 이를 두려워 하여 처단한 것이나 동생까지 처단한 것은 충분히 폭군으로 불릴만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외적의 침입이 많았고 자연재해로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자연재해조차도 모두 왕의 부덕때문이라고 인식되던 시대다. 거기에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만 신경을 썼다는 것에서 안좋게 기록되고 있다. 어쩌면 의심병으로 숙부와 동생을 죽였지만 그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방탕하게 지냈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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