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고려 신돈 요승인가 개혁가인가

신돈은 참 말이 많인 인물이다. 고려말 혜성처럼 나타나 무너져 가는 고려를 일으키기 위해 개혁을 했으나 비참하게 처형을 당하고 후대에는 요승으로 욕을 먹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후에는 더욱더 신돈을 비난하고 고려 우왕의 아버지가 신돈이라며 적통을 부정했다.


신돈에 대한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신돈은 서자로 태어나 승려가 되어 떠돌며 살았다. 승려로 살면서 신도의 신분을 차별하지 않아 모두에게 칭송받는 승려가 되었고 개경 헌화사의 주지가 되었다. 이렇게 명망받는 승려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나 운명과 그의 개혁적인 성향을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독특한 웃음으로 수많은 짤방을 만들어낸 드라마 속 신돈


태후에 의해 공민왕에게 소개되었고 그의 시국관이 공민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돈은 승려였지만 성격이 독특하고 기존 사회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행태를 보였다. 어쩌면 원의 간섭을 벗어나고픈 공민왕은 신돈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신돈은 궁궐을 자주 드나들며 공민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언을 했고 급기야 공민왕은 국정을 신돈에게 맡겼다. 그 즈음 노국공주를 잃은 슬픔에 염증을 느낀 공민왕은 신돈에게 국정운영 전권을 주었다. 완전히 환속한 신돈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했다. 



권력을 잡은 후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토지를 농민에게 보급하고 양인에서 노비가 된 자들을 석방시켰다. 성균관을 중건하고 종자를 국사로 격상시키는 개혁정책을 전개했다. 전민변정도감은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설치한 기관이다. 이를 통해 부패한 세력들도 몰아냈다. 이로인해 백성들은 그를 성인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모두가 신급으로 칭송하고 모든것을 다 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니 사람도 변하나 보다. 그는 사치와 향락에 빠지기 시작했다. 많은 여자에 빠졌으며 부정축재를 했다. 야사에는 공민왕과의 동성애 이야기도 있는 걸 보니 양성애자이거나 승려생활로 억압되었던 성에 대한 욕구가 한꺼번에 폭발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신돈의 힘이 점점 더 커지자 권문세족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공민왕조차도 그의 개혁정책에 점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에 자신이 키운 신진사대부조차도 그를 외면하게 되었다. 결국 주변에 모두 적뿐이었다. 신하들에 의해 신돈이 역모를 꾀한다는 상소를 올려 귀양을 갔다가 참수형을 당했다. 



후에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킨 후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고려말을 상황을 더 암담하게 선전했다. 그 가운데는 고려 우왕과 창왕이 공민왕의 혈통이 아니라 신돈의 혈통이라는 것을 퍼뜨렸다. 그러나 이는 조선 초 고려를 멸망시킨 것에 대해 민심을 돌리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신돈의 개혁은 누구보다도 본인의 타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감되었다. 


공감 하트♡ ) 누르시는 당신은 센스쟁이^^ 


 

 같이 보면 좋은 포스팅

- 고려 충혜왕 음란함의 막장 중의 막장

- 천추태후(헌애왕후) 김치양과 꾸민 음모

- 고려 광종은 왜 미친 숙청을 단행했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