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세운 왕건의 손녀인 천추태후. 원래는 헌애왕후이나 천추태후라는 별칭이 더 많이 불린다. 천추전에 거처해서 붙여진 별칭인데 보통 거처에 따라 별칭이 붙는 경우가 흔히 있다. 천추태후는 왕건의 손녀지만 성이 왕씨가 아니고 황보씨다. 할머니의 성에서 딴 것이다. 이유는 모르나 근친혼에서 오는 성의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라고 추측된다.
신라에서 성행한 근친혼이 고려 초기에도 있었다. 천추태후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둘다 왕건의 아들, 딸로 이복남매사이다. 아버지이면서 외삼촌이고 어머니면서 고모인 이상한 족보. 천추태후는 드라마로 만들어저 이미지 세탁을 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좋은 인물은 아니다.
동생인 헌정왕후와 함께 헌애왕후로 경종의 비로 간택되어 입궁했다. 입궁하자마자 회임을 했고 아들 목종을 낳으며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경종이 목종이 태어난 후 1년만에 죽고 목종의 나이가 어려 천추태후의 오빠인 성종이 즉위했다. 천추태후는 궁을 나갔으나 성종은 후사가 없어 자신의 조카인 목종을 아들처럼 키우고 후임으로 책봉했다.
성종이 죽고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다시 입궁해 천추전에 머물며 섭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천추태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천추태후는 경종이 죽은 후에 자신의 외가쪽 친척인 김치양과 정을 통했다. 김치양은 승려였다. 남편도 일찍 죽고 궁 밖에서 남녀가 만나는데 무슨 문제이겠냐만은(당시는 문제였지만...) 성종은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불붙은 사랑은 쉽게 사그러지지 않는다. 계속 만남이 이어지자 성종은 김치양을 귀향보내고 궁의 기강을 흐트러뜨린 천추태후도 유폐되었다. 다행히 목종이 즉위해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천추태후는 권력을 잡자 다시 김치양을 불러들여 밀회를 즐겼다. 그리고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목종의 후임으로 왕위에 올리려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여동생 헌정왕후의 아들 현종(대량원군)이 있었다. 더군다나 현종은 왕씨 직계 자손이고 천추태후의 아들은 왕씨가 아니었다. 말이 안되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천추태후는 조카인 현종을 죽이려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심지어 승려로 만들어 삼각산 신혈사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김치양은 천추태후의 사랑을 받았기때문에 당연히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비선실세로 마음껏 횡포를 부렸고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아먹었으며 인사도 좌지우지했다.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르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 돈으로 큰 저택을 지어 천추태후와 같이 놀아났다. 또한 충언을 하는 충신들을 모함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중 최고는 역시 같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드려 한 것이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횡포에 목종은 정사에 관심을 잃고 동성연애를 즐기며 향락에 빠졌다. 천추태후는 목종이 자신의 아들임에도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더 중요했다. 목종이 병을 얻어 오래 갈 것 같지 않자 이들은 더욱 현종을 중기려 했다. 절에 자객을 보냈으나 절에 있는 노승의 도움으로 헌종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목종은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나라를 위해서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을 놔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에게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강조는 궁궐까지 군대를 끌고와 목종을 폐하고 헌종을 왕위에 올렸다. 이것이 강조의 정변인데 여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강조가 굳이 정변을 일으킬 이유가 없는데 속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굳이 목종의 명을 받은 마당에 정변을 일으켜 현종을 세울 이유가 없다. 이미 반역의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조는 목종을 폐하고 김치양 부자는 죽여버렸다. 그리고 현종을 왕위에 올렸다. 이 부분도 이상하다. 정변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했는데 굳이 목종을 폐하고 또 현종을 왕위에 올렸다. 어차피 목종이 죽으면 현종이 왕이 되는 것인데. 목종과 천추태후는 유배를 보냈는데 강조가 후환이 두려웠는지 다시 사람을 보내 목종울 시해했다. 천추태후는 황주로 가 66세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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