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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노비 반석평의 의리!


조선시대 노비 반석평이 있었다. 아니 문신 반석평이라고 해야하나. 그는 원래 노비였다. 그시절 과저제도가 있어서 평민도 양반이 될 수 있었으나 노비는 천민의 신분으로 제외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는 이 참판댁 종으로 살고 있었다.


이 참판에게는 아들 이오성이 있었는데 참판의 아들은 과거를 안봐도 벼슬을 할 수 있었기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했다. 반석평은 그에게 천자문 책을 얻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노비의 신분으로 대놓고 공부를 할 수 없었기때문에 모르는 것은 물어보며 도둑 공부를 했다. 



어느날 이 참판은 반석평이 글을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대의 양반들은 노비의 생사를 손에 쥐고 있었다. 노비를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 이 참판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도둑공부를 한 반석평을 벌하겠지만 그는 인자한 사람이었다. 반석평이 총명하다는 것을 안 참판은 그의 재능이 아까웠다. 이 참판은 가난한 평민의 집에 반석평이 양자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는 자신의 집에 왕래하지 말라고 했다. 노비였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반석평의 이야기는 중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기회가 생긴 반석평은 열심히 공부해서 10년 뒤 과거에 합격했다. 후에 반석평은 조정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벼슬이 오르고 지방의 수령으로 지방 곳곳에서 일했다. 그리고 한양으로 올라온 후 병조판서가 되었다. 지금의 장관정도 되는 위치였다. 판서 밑의 별슬이 참판으로 과거 이 참판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른것이다. 



어느날 박석평이 가마에 올라 길을 가는데 길에 낯익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석평은 그에게 다가갔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는 몰락한 양반으로 보였다. 그는 바로 이 참판의 아들 이오성이었다. 참판이 죽은 후 가세가 기울어 몰락한 양반이 된 것이다. 반석평은 그를 집으로 데려가 대접했다.


실존인물로 아직도 묘가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조상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는 법. 궁궐에도 이 소식이 들어갔다. 임금 중종은 그를 불러 자초지정을 물었다. 반석평은 솔직하게 과거를 고했다. 그는 자신의 벼슬을 깎아 이오성에게 벼슬을 내려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이를 기특하게 여긴 중종은 반석평의 자리를 유지하게 했고 이오성에게도 작은 벼슬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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