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중국에는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다.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는 명나라에 사대의 예를 갖추기로 결정한다. 명을 세운 주원장의 아들 영락제는 조선에 쳐녀들을 바치라고 요구 했는데 조선의 태종은 전국에 금혼령을 내려 13~25세 사이 양가의 처녀를 선발했다. 참 병신같은 나라의 병신같은 왕이다.
현비 권씨에 대한 소설책도 있다
이렇게 모인 후보들에게 화장을 시켜 명에서 온 환관 황엄이 직접 뽑았는데 1등급(무슨 고기도 아니고...)으로 뽑힌 인물 중 최고 미를 갖춰 1등으로 뽑힌 인물이 권씨였다. 조선이 명나라에 공녀를 받친것은 이때가 시작이었다고 한다. 물론 원나라때는 거의 점령당했으므로 대놓고 요구하고 잡아갔다. 이후로는 병신같은 왕들이 달라는대로 아주 갖다 바쳤다.
명의 영락제
권씨는 미모가 뛰어나고 총명하며 가무에도 능했고 특히 옥소라는 악기를 잘 다뤘다. 이에 영락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락제는 권씨를 현비로 봉하고 오빠에게 벼슬을 내렸다. 영락제는 권씨에게 아주 홀딱 반한 듯 하다. 현비 권씨를 각별히 총애했는데 인효문황후가 사망하자 명 황실의 내명부를 관장했다고 한다. 아마도 계속 있었으면 황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락제와 북방정벌에 동행했다가(전쟁터에 여자를 왜 데려가는지...) 중병을 얻어 사망하게 된다.
영락제는 크게 슬퍼하여 친히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궁에는 역시 조선에서 온 여씨 궁녀가 둘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온 여씨가 먼저 들어온 여씨에게 동성애를 요구했다. 하지만 거절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현비 권씨가 죽은건 여씨가 차에 독약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고한다.
드라마의 영락제와 이방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방원이 이렇게 멋질리가...
현비 권씨를 잃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영락제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여씨와 관련된 후궁 수백명을 죽였다. 이후에 권씨와 함께 아끼던 왕귀비까지 죽자 더욱 우울에 빠졌는데 그러던 중 궁녀인 여씨와 궁인 어씨가 어린 환관과 간통한 사건이 일어났다. 영락제는 크게 격분해(그 많은 궁녀 중 고작 2명인데...) 시녀들을 심문했다. 궁녀와 궁인은 이미 겁에 질려 자살을 한 상태였다.
심문 결과 궁녀들이 황제를 모살하려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영락제는 많은 궁녀들을 죽였다. 이것이 두 궁녀의 성을 딴 여어의 난이다. 이 사건으로 궁녀 2800여명이 자살하거나 살해되었다. 이렇게 죽은 궁녀들이 어느나라 사람이었겠는가.
드라마 속 끌려가는 공녀들 이건 원나라때이고 조선시대에는 꽃단장 해서 바쳤다.
이렇게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이 중국에 공녀로 바쳐졌다. 현비 권씨처럼 황제로부터 특별히 총애를 받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궁녀들은 고향을 떠나 황제의 노리개감이 되는 신세였다. 어느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의 조공을 당시에 흔했던 무역의 형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국의 여자를 갖다 받치고 비단쪼가리 받아 오는게 무슨 정당한 무역이라는 말인가? 그냥 부끄러운 역사일 뿐이다. 그리고 이 자주적이지 못한 속국의 역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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