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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지식 티움/밀리터리

전설이 아닌 실존하는 세계의 유명 검 10가지

역사에 보면 전설의 명검이 많이 나온다. 이는 확대 과장되어 무협지 등에도 등장하고 전설속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실제로 전해지지 않고 사실인지 알 수도 없다. 현존하는 세계의 유명한 검들은 따로 있다. 신화와 전설속에 존재하는 검은 뺐다.



  토모유키 야마시타의 검 


토모유키 야마시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장군이었다. 그는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의 영국식민지를 점령했다. 전쟁이 끝난 후 야마시타는 마닐라 대학살 및 여러 잔학행위와 관련된 전쟁범죄로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유명 칼 제작자 후지와라 카네나가가 1640년에서 1680년 사이에 제작한 검이 있었다. 이 검은 1900년대 초 재제작 되었다. 이 사무라이 검은 맥아더 장군이 전리품으로 회수해서 웨스트 포인트 군사 박물관에 기증했다. 현재 이 칼은 이 박물관의 훌륭한 컬렉션 중 하나다.



  산 마르틴의 휘어진 기병도


호세 데 산 마르틴은 1778~1850년의 유명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장군이었다. 산 마르틴은 남미의 영웅이며 페루의 첫번째 수호자다. 산 마르틴의 지도 아래 페루는 1821년 7월28일 공식적으로 독립했다. 그의 가장 소중한 자산 중 하나인 구부러진 기병도는 런던에서 구입한 칼이다. 그는 이 칼의 칼날과 형태가 전투에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이때문에 그의 기병들에게도 비슷한 무기로 무장시켰다. 이 구부러진 기병도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해다가 아르헨티나의 두명의 장군을 더 거쳐189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국립역사박물관에 전해졌다. 그는 살아생전 이 검을 남아메리카 독립 전쟁에서 나와 동반한 검이라고 했다. 1960년대 두차례 도난을 당했다가 돌아왔다. 



  백제 칠지도


백제의 칠지도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있다. 백제는 4세기 국가의 정점에 이를때 한반도 남서쪽을 장악하고 중국일부와 일본까지 위세를 떨쳤다. 372년 백제의 근초고왕 때 만들어져 일본에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길이 74.9cm의 철검으로 6개의 돌출부가 있다. 전투보다는 어떤 의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1870년 일본 마사토모칸이라는 신사에서 발견되었다. 같이 발견된 비문에는 이 검이 태화 4년 열한번째 달 여섯째 날 정오에 100시간 동안 강철을 담금질하여 만들었고 검을 사용해 적군 100명을 격퇴시켰다고 적혀있다. 일본은 이 검을 가지고 백제에서 자기들에게 바쳤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때 당시 일본은 미개한 족속이었고 왕족은 백제의 이주민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나라의 이소노카미 신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월러스 검


윌리엄 월러스는 1272~1305년에 살았던 스코틀랜드의 기사였다. 월러스는 13세기 후반과 14세기 초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기간동안 영국에 저항을 이끌었다. 그는 평생 스코틀랜드의 수호자였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체포되어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주인공이 바로 윌리엄 월러스다. 그의 칼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칼 중의 하나다.



윌리엄 월러스의 칼은  스코틀랜드 스털링의 국립 박물관에 있다. 칼은 길이가 132cm에 무게는 2.7kg. 그가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와 1298년 포칼크 전투에서 사용한 무기다. 검의 칼자루 끝은 철조각이 박힌 둥근 모양이며 손잡이는 짙은 갈색 가죽으로 쌓여있다. 검의 칼자루와 손잡이는 원본이 아니고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칼자루와 띠는 영국 사령관인 휴 크레식의 피부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티조나 검

 

엘 시드는 1040년경에 태어난 이베리아 반도의 카스티야 왕국 군사지도자다. 그는 알폰소 4세의 군대 수장으로 임명되어 스페인의 영웅이 되었다. 엘 시드는 무어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는데 그는 숙련 된 군사 전략가이자 강력한 검객이었다.



엘 시드는 일생동안 여러가지 칼을 소유했지만 가장 유명한 두가지는 콜라다와 티조나라는 이름의 칼이다. 티조나는 무어와 싸울 때 사용한 칼로 이것은 스페인의 가장 귀중한 유산 중 하나다.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길이가 103cm, 무게 1.1kg이다. 두개의 글이 적혀 있는데 하나는 1002년의 제조일이고 또 하나는 카톨릭 기도 아베 마리아를 인용한 것이다. 현재 스페인 데 부르고스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나폴레옹의 검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의 군사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 5년 후 프랑스 상원은 그에게 황제칭호를 부여했다. 19세기 첫 10년동안 나폴레옹은 주요 유럽지역 분쟁과 전쟁에 차여했고 수많은 승리를 이뤄냈다. 하지만 러시아 침략이라는 악수를 둔 후 체포되어 나중에 엘바 섬으로 추방되었다. 



전쟁터에서 나폴레옹은 권총과 칼을 휴대했는데 그의 검은 최고의 재료가 포함된 명검이었다. 2007년 나폴레옹의 황금색 칼은 경매에서 6백 4십만 달러에 팔렸다. 그의 칼은 1800년 초 동생에게 결혼선물로 주어졌고 보나파르트 가문에 대대로 전해졌다 1978년 프랑스에서 국보로 선포되었다. 경매에서 칼을 따낸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자비의 검 


자비의 검은 참회왕 에드워드의 유명한 칼이다. 에드워드는 1066년 노먼 정복 전에 영국의 마지막 앵글로색슨 왕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042년부터 1066년까지 통치했다. 그가 가졌었던 자비의 검은 칼날 끝이 깨져서 각이 져있다. 1236년 이 무기는 커타나(칼끝이 없는 검)이라 이름 붙여져 왕실의 의식에 사용되었다. 검이 부러지면 버리거나 고쳐야 할텐데 그냥 의식용 검으로 사용한 걸 보면 보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고대에 왕 앞에서 이 검으로 가볍게 내리쳐지는 것은 일종의 특권으로 자비로운 제스추어로 간주되었다. 칼끝이 부러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설에는 부당한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천사가 끊어버렸다고 한다. 자비의 검은 영국 군주의 대관식에 사용된 5개 검중 하나로 대관식 기간 동안 군주가 기사작위를 수여할 때 사용되었다. 

 


  줄피카르 시미타(언월도) 


줄피카르는 이슬람 지도자 알리의 고대 칼이다. 알리는 이슬람 선지자 무하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다. 그는 656~661년 이슬람 칼리프의 통치자였다. 무하마드는 우 흐드 전투에서 줄피카르를 알리에게 주었다. 무하마드는 전장에서 알리의 무력에 감탄헤 이 검을 주었다고 한다. 이 검은 이슬람 신앙의 상징처럼 되어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줄피카르는 초승달 모양의 것으로 서아시아 또는 남아시아에서 이런 휘어진 검을 언월도라고 한다. 알리가 트렌치 전투에서 이 칼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림으로만 존재한다. 이 칼은 여러 세대를 거쳐 전달 되었고 현재 이맘 무하마드 알 마디의 소유로 되어있는데 공개되지 않아 볼 수가 없다. 



  혼조 마사무네 


마사무네는 일본의 칼 장인으로 세계 최고의 금속공학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는 1288~1328년에 생존했고 수세기에 걸쳐 전설적인 지위에 도달했다. 그는 타치와 데거스로 알려진 칼을 만들었고 그의 칼은 뛰어난 아름다움과 질로 명성이 높다. 그는 거의 그의 칼에 서명을 하지 않아 그의 칼이 어떤건지 명확히 밝히기가 힘들다.



마사무네의 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혼조 마사무네다. 막부시대를 대표하는 검으로 여러 세대 동안 전해지다 1939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도쿠가와 가문의 소유로 남았었다. 마지막 주인은 도쿠가와 이에마사였는데 일본이 망한 후 1945년 12월 메지로 경찰서에 14개의 다른 검과 함께 보관되었다가 얼마되지 않아 1946년 1월 미군 제 7기갑 부대 사병에게 주어졌고 그 뒤 사라졌다. 현재 칼의 소재는 수수께끼다. 2차세계 대전이 끝난 후 사라진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조이우스 


샤를마뉴 대제는 742년 경 태어난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하나다. 768년 프랑크족의 왕이 되었다. 800년 그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으며 남은 생을 그 지위를 유지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그는 찰스 1세로 알려졌고 첫번째 황제였다. 조이우스는 샤를마뉴의 개인 검의 이름인데 현재 같은 이름의 두개의 검이 있다. 하나는 비엔나에 보관되어 있고 하나는 프랑스 루브르에 있는 기병도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칼날은 샤를마뉴의 원래 검의 부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수세기를 거쳐 여러 부품들이 결합되어 확실한 조이우스라고 식별하기 힘든 면이 있다. 칼의 자루는 제조 날짜가 있고 손잡이는 금 조각이 되어 있으며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었다. 이 검은 여러 역사서에 등장하는데 사라센 사령관을 참수할때도 사용되었다 하고 그의 친구 홀거 단스케의 기사 작위수여에도 이용된다. 나중에 프랑스 왕 대관식에도 이용되었다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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