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는 강인한 전투국가로 알려져 있다. 가장 극단적인 전투력으로 지금도 영화, 문학, 코미디 등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스파르타인들은 그리스 안에 위치해 있지만 그와 다른 독특한 문명을 가졌다. 그들은 평등을 추구했고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중요성, 의무와 권리의 가치와 같은 핵심 개념을 개발했다. 주변 그리스나 로마가 핵심가치를 신에 두었던 반면 그들의 가치는 완벽하게 인간을 향했으며 유토피아의 아이디어는 스파르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파르타는 아틀란티스만큼은 아니지만 전설 속 문명처럼 남아있다. 이는 기록이 많지 않고 웅장한 건축 같은 유적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고대시대에 유래가 없는 수준의 자유와 교육, 평등을 누렸다고 한다. 사회, 남성, 여성, 주인, 노예의 각 구성원은 정확한 역할을 했다. 노예에게는 좀 가옥한 문명이었지만... 스파르타가 전투민족이 될 수 밖에 없는 특징 8가지를 살펴보자.
스파르타 아이들은 전투를 위해 태어났다
흔히 힘든 훈련을 스파르타식이라고 한다. 그만큼 스파르타의 생활은 전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는 아주 어릴때부터 시작된다. 스파르타는 공동체에 의해 아이가 키워진다. 아기가 티어나면 검사관 현의회에서 신체적 결함을 검사한다. 신체적으로 이상이 생기면 도시 외각으로 버려져 죽을 수 밖에 없다. 운이 좋다면 그곳을 지나는 외부인에 의해 구출 될 수 있지만 그러기는 힘들다. 첫번째 테스트에서 살아남은 아기는 와인을 마시며 신체적인 속성을 강화시킨다. 아기때부터 스파르타의 생활방식에 적응하게 된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그들의 간호사나 보모의 역할을 한다.
7살이 될 때까지 스파르타의 소년들은 가족과 살지만 이후 공동체의 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는다. 첫번째 훈련은 '아고게'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 스파르타인을 완벽한 전사로 만들어주게 된다. 이 곳에서의 훈련은 신체운동과 잠행기법, 충성교육, 전투훈련, 고통에 대한 내성훈련, 사냥, 생존기술 사회적인 의사소통, 도덕등을 배운다. 단순히 군사훈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 작문, 수사학, 시 등도 배운다. 12세가 되면 빨간 외투를 제외한 모든 의복과 소유물을 반납하고 밖에서 노숙을 한다. 갈대로 잠자리를 만들고 음식등은 훔쳐서라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잡히면 심한 처벌을 받는다.
남자들만 훈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소녀들도 7살까지는 가족과 살지만 이후 공동체의 교육기관에서 춤, 체조, 창던지기, 원반던진기 등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들은 그녀들을 완전한 스파르타 전사들의 어머니로 만들어주는 훈련이다.
자기들끼리 마주하고 싸운다
스파르타는 아이들을 전사로 만들기 위해 그들 사이에 싸움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학생들 사이의 논쟁을 격려하고 싸우도록 이끈다. 이 주된 목적은 훈련생들이 실제 전쟁 중에 겪게 될 모든 고난과 고통으로부터의 내성을 기르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약점이 잡히거나 비겁한 행동, 겁을 먹거나 하면 동료들에 의해 가혹한 처벌과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이 상황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독려하고 소녀들은 나서서 응원을 했다.
이런 굴욕없이 성장할 수 없다. 스파르타인들은 규정밖의 사람들을 완벽히 혐오했다. 매일 있는 이 훈련은 신체운동과 함께 스파르타 남녀라면 평생 해야만 한다. 이는 정신력을 강하게 만드는 훈련인데 이를 견디지 못하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추방될 수 밖에 없었다.
인내력 테스트
스파르타의 소름끼치는 관행 중 하나이며 필수적인 훈련은 인내력 테스트이다. 이 전통은 아르테미스 제단에서 이웃 정착민들이 서로를 죽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생겼다. 그 이후로 매년 사람들의 희생이 생기고 있다. BC 7세기 유명하고 신화적인 스파르타의 의원이었던 리쿠루구스 이후 시작된 이 의식은 아르테미스 오르티아의 제단 계단이 훈련생들의 피로 물들때까지 채찍질을 하는 것이다.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제단은 치즈로 덮여있고 소년들은 이것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들의 손을 막대기와 채찍으로 가차없이 때리는 것이다. 이 전통은 사실상 훈련생들이 스파르타 전사와 시민으로 받아들여지는 성인식 같은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는 소년은 그의 용기에 위대한 영광을 얻는다. 이 이벤트 중에는 죽는 일도 드물지 않다.
크립테이아
훈련생들이 20세가 되면 미래의 지도자로 선택된 사람들은 크립시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는 일종의 비밀 경찰에 가깝다. 이들은 헤일로타라고 하는 스파르타의 노예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게릴라 부대였다.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1만명의 스파르타인에 노예인구는 7배가 많았다. 스파르타의 대부분의 인구는 노예인 것이다. 이들은 스파르타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다. 그들은 스파르타인들에게 필요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게 만들어줬지만 막강한 힘때문에 군사반란의 위협을 안고 있었다.
매년 가을 젊은 군사들은 헤일로타를 죽이는 테스트를 받는다. 밤에 크립테이아의 멤버가 칼로 무장을 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만나는 모든 노예를 죽이라는 지시를 받는다. 가장 낮은 계층에 대한 이 살육은 그들의 복종과 안정적인 인구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이 끔찍한 행사에 참여한 젊은 병사들만이 언젠가 군이나 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을 희망할 수 있었다. 남은 기간동안 비밀경찰들은 순찰을 하며 불안정한 요인을 찾았다. 그리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노예들은 즉결 처형되었다.
강제 결혼
스파르타인들은 30세가 될때까지 공동체 안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삶을 살고 이후에는 의무는 면제되지만 60세가 될때까지 예비군에 편입된다. 30세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강제적인 역할을 덜 강요받는다. 스파르타인은 새로운 병사를 만드는 것으로서 결혼을 중요한 행위로 생각했으며 소녀들은 19세 전후로 결혼을 했다. 미혼남들은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건강과 체력을 평가받았다. 강제로 배우자가 체결되기는 했지만 여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 병사들은 정작 결혼을 해더라도 30세가 될때까지 아내와 따로 살았다. 남자들이 예비군에 들어갈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그는 의무를 게을리 한것으로 간주되어 공개적인 조롱을 받는다. 만약 스파르타인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그는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한다. 스파르타에서는 한 여자가 여러 파트너와 그들의 아이들을 모두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스파르타 무기 및 갑옷
스파르타가 포함한 모든 고대 그리스 군대의 대다수는 헬로트라는 노예들이었다. 이들은 중무장 한 병사 들로 각각의 도시 국가의 시민이었으며 전투에 사용할 수있는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문 군인은 아니어서 훈련이 부족했다. 하지만 스파르타 군인은 전적으로 전쟁을 위한 생활을 했으므로 평생 훈련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들의 기본 무기는 긴창과 방패다. 이 창의 길이는 약 240cm이며 한손으로 잡는다. 청동이나 철로 만들어졌고 손잡이는 코넬 나무로 되어 있다. 이 나무는 밀도와 강도가 강한데 너무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물에 가라앉는다. 이들의 상징인 둥근 방패는 약 13.6kg의 무게를 지녔고 막는 용도 외에도 타격용으로도 쓰인다. 이 방패는 청동에 바깥쪽은 가죽 또는 나무로 쌓여있다.
만약 창이 부러지거나 근접전이 되면 약 45cm정도의 짧은 칼을 사용하여 전투를 한다. 스파르타인은 일반적인 모양의 칼보다는 뒤쪽으로 휘어진 양날의 검을 주로 이용했다. 이것은 두껍고 곡선 형태의 철검으로 도끼처럼 사용해 상대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었다. 이외에 머리와 목뒤쪽 얼굴을 보호하는 청동 헬멧과 청동이나 가죽으로 된 가슴 보호대, 정강이, 무릎, 팔을 보호하는 보호대도 착용했다.
전투 대형
스파르타의 전투 대형은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8열 이상으로 늘어서 밀집한 대형을 이룬다. 남자들은 어깨를 맞대고 서서 왼쪽 절반을 방패로 덮는다. 나머지 부분은 옆의 병사 오른쪽을 감싸게 된다. 방패의 위나 앞쪽으로 창을 내밀어 고슴도치 모양이 된다. 이 대형으로 함성을 지르며 전투를 하는데 스파르타인들은 이 훈련을 아주 많이 해서 익숙해져 있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이 형태로 밀어붙이며 싸움을 한다. 럭비의 스크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대형의 약점은 왼쪽 측면인데 각각의 사람들이 보호를 위해 방패를 이동하면 왼쪽 측면이 노출되게 된다. 따라서 더 실력이 좋은 병사를 오른쪽으로 배치해야만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항복따위는 없다
극단적인 충성도 훈련을 받은 스파르타인들은 무엇보다 비겁한걸 싫어했고 두려움없이 싸울 수 있었다.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도 항복은 비겁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항복을 하느니 자살을 선택한다.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남자들이 전투를 떠날 때 '안전하게 돌아오거나 멋지게 죽어라'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의 결과는 승리해서 돌아오거나 죽는 것 두가지뿐이다. 남자는 전쟁에서 죽는 것, 여자는 아이를 낳는 것 이 두가지가 자신의 묘비명에 영원이 이름을 새기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텔모필레 전투는 스파르타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일화다. 오직 전쟁을 위해서만 사는 전투민족으로 스파르타는 이런 과정들을 거쳤다. 그리스 군대의 좌우명인 'Molon Labe' '와서 가져가라'는 스파르타 왕이 페르시아가 땅과 물을 내놓으라고 하자 한 말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최고로 강한 침략국가였다. 스파르타의 강단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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