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바이킹을 해적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이킹은 북유럽이 씨족 그룹으로 해적단체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큰 군사무리들이다. 북게르만족 일파인 노르드인을 통칭하는데 크게 스웨덴계 바이킹과 덴마크계 바이킹으로 나뉜다. 바이킹이 약탈만 한 것은 아니고 상업도 했다. 인구가 늘어 농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줘지자 주변 국가들의 약탈에 나선 것이다. 영화나 만화같은 곳에서 묘사되는 바이킹은 거대하고 수염 덥수룩하고 무식한 폭군들처럼 나오지만 사실 멀끔하고 평균적인 남성들이 테반이고 일반적인 선원과 상인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단한 전사들이었다. 계속 전쟁을 하지는 않았어도 폭력적이고 잔인한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싸울 때는 거의 모든 적들을 도륙했고 전사의 생활방식을 동경하고 일상화 했다. 바이킹 전사들의 신기하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아보자.
바이킹을 살인기계로 만드는 마술 버섯
바이킹은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 사이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원이었다. 바이킹이 침략할 때 그들은 버서커(berserker, 용맹한 전사)라 불리는 일종의 환각상태에 빠졌다. 이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적들을 살해하게 되었다. 이 버서커에 진입하는 것에 대한 한가지 이론은 실로시빈 버섯을 먹었다는 이론이다. 마술 버섯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버섯은 처음 한 미국정신의학저널에 보고되었다. 이 바이킹이 살았던 지역에서 자란 버섯이 환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것을 먹으면 아드레날린 수치가 증가해 버서커 상태가 되었다. 이 버섯으로 인해 바이킹들은 사람들을 도륙하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킹의 검
바이킹은 장축과 창 같은 여러가지 무기를 사용했다. 그들은 방패조차도 공격 무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소중한 주무기는 긴 칼이다. 바이킹족은 '위도우 메이커' '콥스 블램블'과 같은 이름이 붙여진 칼을 대대로 물려줬다. 바이킹 소년들이 자라면서 그들의 아버지는 칼에 의해 죽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이것은 가족 역사를 이어가고 전투민족의 사고를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칼은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라 두개골을 자를 만큼 날카롭고 두꺼웠으며 한번에 팔 다리는 예사로 잘랐다. 남자들은 항상 칼을 들고다녔고 옆에 두고 잠을 잤다. 이는 반드시 약탈때문만이 아니라 씨족끼리의 분쟁때문이기도 했다. 바이킹의 파벌은 끊임없이 전쟁을 했다. 남자들은 집과 가족을 지키고 부족의 재산을 지키기를 원했다.
살인을 허용한 관습 홈갱
바이킹의 사법 시스템은 오늘날의 법률과 다소 다르다. 특히 상류 계급을 모욕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지만 살인이 반드시 불법인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살해되면 가족이 살인자를 살해할 수 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이때문에 계속 피튀기는 싸움이 반복되었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홀갱인데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싸움으로 본질적으로 결투다. 한 사람은 잘못을 했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람에게 도전을 한다. 그러면 한 주 이내에 결투가 열리게 되고 누군가 도전 받은 사람 대신 싸움을 자원할 수도 있다. 결투가 시작되면 도전자는 지역마다 다른 규칙을 적용받는다. 규칙에는 사용하는 무기, 방패, 첫 공격을 할 사람, 승자의 기준,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등이 포함된다. 물론 홀갱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투 중 하나가 죽는 경우였다.
도전 받은 사람이 결투에 나가지 않으면 자동으로 유죄로 간주된다. 만일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어떤 계급의 사람도 법적으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것을 일족의 지도자라도 결투를 위해 나타나지 않으면 노예더라도 어떤 법적인 제재도 없이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무시무시한 바이킹 게임
바이킹은 폭력을 사랑했기때문에 이종격투기는 우습게 보일 정도의 경기를 했다. 바이킹 게임에서는 사망이나 심각한 부상이 자주 발생했다. 규칙은 참가자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경기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경기 중 죽는다면 그것은 본인 잘못이다.
그들의 게임 중 하나인 수영 경기를 보자. 말이 수영이지 이 게임의 포인트는 참가자가 상대를 최대한 물속으로 누르는 것이다.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하면 익사한다. 또 다른 게임은 두팀이 공으로 하는 게임이다. 상대가 공을 못 잡게 전면적으로 부딪힌다. 이것은 폭력적이고 가을에 한번만 시행했다. 레슬링은 바이킹 문화의 또 다른 것으로 마을을 습격하지 않을때도 항시 이를 통해 몸을 단련했다.
게임 자체가 위험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소년들이 집단으로 하는 게임에서 6살짜리 소년이 상대 소년이 머리에 도끼질을 한 경우도 있다. 지난 게임에서 그 소년이 거칠게 했기때문이다. 싸움이 현장에서 끝나지 않으면 몇년 동안 피의 전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게임이 얼마나 격렬한지 바이킹 전사가 전투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싸울 수 있지만 게임은 너무 격렬해서 끝나기를 바랄 정도였다고 한다.
콜롬버스보다 신대륙에 먼저 간 에릭 더 레드
잔인하기로 유명한 바이킹 전사들 중에서도 에릭 토발스 손은 더욱 더 유명한 전사였다. 그는 붉은 에릭(Erik the Red)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노르웨이에서 950년경 태어났다. 에릭이 어릴 때 그의 아버지는 살해당한 채 추방당했고 그의 가족은 아이슬란드로 이주했다.
에릭은 붉은 머리카락과 강력하고 폭력적인 성격탓에 그의 유명한 별명을 얻었다. 그의 이런 성질때문에 980년 경 곤경에 빠져버렸다. 아이슬란드의 하우카데일에 살면서 에릭의 하인들은 소요를 일으켜 이웃집을 파괴했다. 그집 주인의 친척인 에이욜프는 일을 저지른 하인들을 살해했다. 분노한 에릭은 에이욜프와 일족을 죽였다. 에이욜프 가족은 정당한 판결을 요구했고 에릭은 추방되었다.(일가족을 몰살해도 추방정도...)
에릭과 그의 가족은 북쪽으로 이동해 아이슬란드에 머물렀다. 한 섬에 농장을 세우고 정착했는데 새로운 이웃이 그에게 나무기둥을 빌려갔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나무였다. 그것을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이웃은 돌려주기를 거부했다. 말다툼이 일어난 끝에 에릭은 이웃과 그이 아들 둘 친구 몇명을 죽였다. 에릭은 다시 추방되었다.
에릭이 가족들과 간 곳은 그린란드였다. 그는 그곳에서 정착했다. 콜롬버스보다 500년 앞서 신대륙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는 아이슬란드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그린란드 이주를 독려했고 두개의 식민지가 세워졌다. 에릭은 여생을 여기서 보냈다. 그 가족은 북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식민지를 세운 최초의 유럽인이다.
잔인한 바이킹식 사형 피의 독수리
바이킹은 블러드 이글 (Blood Eagle, 피의 독수리)이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사형집행 방식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피의 독수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데 피해자가 아래를 보게 하고 묶는다. 그런 후 날개를 뻗은 독수리 모양이 되게 만드는데 이 방식이 잔인하다. 희생자의 등을 갈라 도끼로 갈비뼈를 척추에서 분리한다. 그 후 이것을 날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뒤로 잡아당겼다. 이것은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 후 폐를 밖으로 끄집어 내 살과 뼈로 만든 날개위에 펴지게 만드는데 목격자들은 폐가 마지막 숨을 들이 쉬면서 날개가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바이킹은 그들의 작품에 사형집행을 묘사했는데 이를 통해 적어도 2번 이상은 이 형이 집행된 것으로 추측한다. 연구자들은 이 블러드 이글이 실제로 수행되었는지 아니면 은유적인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사실이라기에는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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