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갇힌 상황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다. 영화가 나쁜 건 아니지만 보는 내내 슬프고 욕이 나오게 된다. 그건 모두가 느끼듯이 세월호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나라의 대처법도 딱 그대로 표현했다. 거기 나오는 장관 아줌마는 박근혜를 생각나게 하고. 감독은 세월호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인터뷰를 했지만 딱 세월호가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다. 이게 대한민국 현실이니까.
연기 잘하는 원로 탤런트 김해숙씨가 장관역으로 나오는데 딱 박근혜를 생각나게 만든다. 감독의 주문이었는지 배우의 창조였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말투와 행동으로 연기하고 있다. 그래서 더 욕이 나온다. 부실한 시스템과 부도덕한 책임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몇몇 사람들. 결국 결과에 대한 단물만 쪽쪽 빨아먹는 건 아무것도 안한 권력자들이지만, 큰 소리로 욕지거리 한번 해주는 것 밖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정우의 연기는 정말 정점에 다다른 것 같다. 어떤 배역이든지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낸다. 심각한 상황설정에서도 다행히 코믹적인 연기가 많아 그나마 속이 덜 타는 것 같다. 이거도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영화보는 내내 욕만 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터널은 재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딱 그 헬조선의 전매특허 과정을 보여준다. 사고, 허술한 메뉴얼과 시스템, 구조 시늉, 무능, 시간 경과, 지겹다는 프레임. 진짜 사과해야 할 사람은 어딘지 보이지 않고 오직 피해자들이 죄인이 되는 이상한 수습 과정.
현실적 비참함도 모두 담아내면서 영화적 재미도 놓치지 않는 영리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한국적 재난 영화의 필수 요소인 신파마저도 빼버리면서도 끈적끈적한 슬픔과 감동을 자아낸다. 하정우의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지만 점점 연기의 깊이가 더해가는 듯한 배두나의 감정 연기도 좋았다.
우리는 여전히 터널속에 갇혀 있다. 이제서야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 조금 입구의 빛이 보인다. 이대로 무너져 갇히게 될지 터널을 빠져나갈지는 모르겠다. 이런 영화를 볼때 지금처럼 강한 현실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라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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