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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설민석 공식입장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팩트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사 강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강사인 설민석이 공식입장을 SNS에 전했다. 문제가 된 것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했다며 후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인데 설민석이 강의에서 한 이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설민석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적인 의견이 있다. 왜 그곳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었는가와 국민들과 같이 만세를 부르지 않고 자진해서 일본경찰에 잡혀갔는가 하는 것 등 의문이 많다.



설민석은 자신의 강의에서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인 태화관에서 대낮에 낮술을 마신 뒤 독립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태화관에서 모여 독립선언을 한 이유에 대해 마담 주옥경과 손병희가 결혼한 사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민석 강의에서 가장 문제가 된 송병희 선생


이에 대해 후손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설민석의 사무실을 찾아와서 항의했고 사과를 요구했다. 문제가 커지자 설민석이 SNS에 사과를 한 것이다. 그는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설민석이 다른 시각으로 강의를 한 것에 대해 '당시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면 구지람을 달게 받겠다며 사과했다.



다음은 SNS에 올린 설민석 공식입장 전문이다.


<설민석 공식입장>  


안녕하세요. 설민석입니다. 


오늘 보도된 사건과 관련하여 저의 입장을 밝히고자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수험강사로서 교과서를 기본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다만,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역사라는 학문의 특성상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저와 생각이 다른 여러 분들의 따끔한 조언과 걱정 어린 시선이 있음도 잘 알고 있고,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수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불거진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제 입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민족대표 33인이 3.1 운동 당일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자발적으로 일본 경무 총감부에게 연락하여 투옥된 점과, 탑골공원에서의 만세 운동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만세 운동을 이끈 것은 학생들과 일반 대중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계의 평가가 있으며 민족대표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역시 존재합니다. 


저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를 수용하여 도서 및 강연에 반영하였으며, 그 날, 그 장소, 그 현장에서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날 그 사건에 대한 견해일 뿐이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또한 그 날의 사건만으로 민족대표의 다른 업적들이 희석되거나 가려져서도 안 되며, 그분들을 추모하여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유족 여러분들께 상처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당시에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와 싸운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대중들의 숭고한 죽음을 널리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는 다르게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족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은 달게 받겠습니다.


저 때문에 상처받으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신중한 자세로 역사 대중화에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설민석은 공식입장 내용에서도 보이듯이 역시 민족대표 33인의 팩트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는 예전 교과서에서 이 이야기를 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한 생각과 일치한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런 선언문을 만들었는지... 진짜 민족대표라면 국민들의 앞에서서 광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쳐야 함에도 실내에서 선언문만 읽고 감옥으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비판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강의에 반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슈가 되면 또 토론하고 틀린것은 바로 잡고 그렇게 해나가는 것이고. 그렇게 학문이 발전하는 거고 이런게 민주주의인 것이다. 


설민석이 룸싸롱 같은 과격한 용어를 써서 그런거지 대중강연에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런 단어를 쓰는 것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태화관도 위키피디아의 내용은 인용하자면 

'태화관은 본래 이완용의 별장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정사를 논하기도 했던 곳이다. 이완용이 이사하며 요리집이 개점하였다. 모체인 명월관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조선이 멸망하면서 실직한 궁중요리사 안순환이 궁궐 요리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1890년 관기제도가 없어지자 지방과 궁중의 기녀들이 명월관에 모여들었으니 명월관은 사교장으로 유명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명월관은 친일파들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돈으로 방탕하게 노는 곳이 되었다. 이완용, 송병준, 이지용등의 상징적인 친일파들이 단골손님이었다. 1918년 화재로 명월관이 없어지자 안순환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 명월관의 별관인 태화관을 열었으며,기생들과 양악대가 춤과 노래를 제공하는 영업으로써 손님들을 불러모았다.'

이렇다. 사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룸싸롱이라고 표현해도 딱히 틀린말은 아니다. 그때 그런말을 안썼을 뿐이지.


태화관 사진. 술먹는 곳 맞다. 방이었고. 거기에 여자까지 들어오면 룸싸롱인거지 뭐...


생각은 다를 수 있는 거다. 3.1운동을 자랑스러워하고 이에 참여한 수많은 국민들을 자랑스러워하면 되는거지 꼭 교과서적으로 33인을 대단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촛불혁명을 자랑스러워하면 되는거지 앞에 나선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을 꼭 자랑스러워 할필요가 없는 것처럼.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에서 참여했을 뿐.


이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거 자체가 자랑스러운거지.


여담으로 민족대표 33인이 대부분 변절했다는 얘기가 한때 많이 돌아 정설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이 아니고 변절자는 3명뿐이다. 민족대표라는 타이틀을 걸고 변절을 한 3명은 가루가 되도록 까여야 할 일이고... 나머지까지 변절자로 매도하지는 말아야 한다. 33인 중 변절자는 최린, 박희도, 정춘수. 이중에도 적극적 친일행위자는 최린, 박희도 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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