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에서 재평가 받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사도세자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질때 좋은 쪽으로 되는데 반해 사도세자는 나쁜쪽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그전에는 뒤주에서 억울하게 죽은 불쌍한 세자로 인식되었던 반면 요즘에는 뒤주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여러가지 사도세자의 행태에 대해서도 말이 있기때문이다.
사도세자의 행위 중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과 화완옹주와의 관계다. 어떤 곳에서는 화완옹주와 근친관계였다는 얘기도 있고 겁탈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식으로든 화완옹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사실 생각하는 것 만큼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었던 듯 싶다.
불쌍한 사도세자에서 싸이코로 평이 변하는 중
화완옹주는 영조의 눈에 넣어도 안아픈 막내딸로 그래서 그런지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어쩌면 그것이 영조의 미움을 받았던 사도세자와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추정을 하는 이유이겠지만 사실 사도세자와 화완옹주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붉은달에서는 화완옹주가 사도세자를 안스럽게 바라봄
화완옹주는 결혼을 했으나 딸을 일찍 잃고 얼마뒤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 다시 궁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그 상황이 안스러워서 그런지 영조가 더욱 아꼈다. 남편과 딸을 잃어서 그런지 화완옹주도 영조의 사랑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집착은 조카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에게까지 미쳤다. 오히려 정조의 친모인 혜경궁홍씨보다 더 집착하고 조카며느리인 효의왕후에게 시어머니 노릇까지 톡톡히 했다.
이런 화완옹주의 비정상적인 애정때문에 어쩌면 사도세자와의 근친관계였다가 사도세자가 죽자 정조에 집착하게 된거라는 추측도 하게 된다. 이는 사도세자가 화완옹주와 궁녀들을 불어 밤새 잔치를 열고 이에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녹초가 되어 엉켜 잤다는 것에서 근친관계였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화완옹주를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도세자는 이렇게 잔치를 열면서도 화완옹주에게는 다른 옹주에게와 달리 냉랭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두 질투때문인 것 같다. 영조는 화완옹주에 대한 집착으로, 사도세자는 영조의 사랑을 빼앗는 화완옹주에 대한 질투로 점점 골이 깊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화완옹주의 정조에 대한 집착때문에 정조는 부담을 느꼈다. 매체에는 홍인환과 화완옹주가 모의해 정조를 배척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사실 정조외에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 정조를 화완옹주가 그리 배척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다만 화완옹주는 영조에 대한 사랑으로 영조가 물러나고 대리청정을 하게 되는 것을 반대했다. 정조 즉위 후 홍인환은 숙청되었다. 화완옹주도 대리청정 반대때문에 유배를 갔는데 정조는 유배를 보냈어도 극진하게 대했다고 한다.
화완옹주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그런것 같지는 않고 나중에 정조가 유배에서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옹주로 복권되지는 못한 것 같다. 화완옹주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몇몇 기록을 근거로 자극적으로 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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