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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의빈 성씨 정조의 승은을 거부하다

옛날 왕들은 사실상 후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임금이 원하는데 후궁이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임금의 눈에 들기 위해서 후궁들은 갖은 방법을 다 썼다. 승은을 입어 임신이라도 하면 인생이 핀다고 볼 수 있기때문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가 유일하게 사랑한 비운의 여인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임금의 승은을 거부한 여인이 있다. 의빈 성씨. 후궁의 신분에 정조의 승은을 거부했다. 이에 정도는 15년간이나 기다렸으니 정조도 어지간이 의빈성씨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의빈 성씨의 본명은 덕임. 10살의 나이에 궁에 들어갔다.



혜경궁 홍씨의 궁녀로 입궁했는데 혜경궁은 양녀처럼 보살폈다. 14살의 나이에 정조로부터 승은을 입을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현 왕비인 효의왕후가 아직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하여 이를 거부했다. 사실상 목숨을 건 거부였다. 정말 도리를 아는건지, 욕심이 없는건지, 아니면 정말 정조가 싫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효의왕후는 끝내 임신을 하지 못했다. 정조는 후궁을 둘을 들였는데 둘다 임신을 하지는 못했다. 이에 다시 정조는 의빈 성씨에게 다시 고백을 했으나 의빈은 이를 또 거부했다. 정말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싫었던걸까?




이에 정조는 치졸하게도 의빈 성씨의 하인에게 벌을 내렸다. 의빈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나보다. 결국 하인이 괴롭힘을 당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정조를 받아들였다. 정조는 조선의 왕이다.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무력으로 의빈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15년을 기다렸다. 어쩌면 정조는 로맨티스트였나보다.



의빈 성씨는 문효세자를 낳았다. 그리고 옹주도 나아 아들하나 딸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옹주가 2개월만에 죽고 문효세자도 5살에 죽고 말았다. 이에 충격을 받았는지 의빈 성씨는 만삭의 몸으로 뒤이어 죽고 말았다. 여기에는 독살설도 있다. 치료약을 먹고 바로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것이다. 정조도 약을 달일 때 자신이 직접 검열하는 것을 들어 독살이 아닐 것이라 판단했다. 두번이나 거절당하고 이룬 사랑에 이성을 잃을 만도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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