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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신덕왕후, 이방원만 아니었어도...

이성계의 계비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 이방과 이방원의 계모이기도 하다. 이방과 이방원의 친모인 신의왕후가 있었으나 신의왕후가 왕비로 추존된 건 정종때이니 최초의 왕비는 신덕왕후다. 아들은 무안대군, 의안대군, 딸로는 경순공주를 두었다.


이 신덕왕후는 미모와 지략을 갖춘 대단히 걸출한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는 데 공로가 있는 여인이기때문이다. 고려 충혜왕때 권문세가의 딸로 태어나 이성계와 정략결혼을 했다. 이는 이성계의 세가 크게 성장해 권문세족과 비등해졌기때문이다. 혼인할 당시 강씨는 이성계보다 무려 20살이나 어렸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여러명이라...>


이성계가 사냥을 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가에 있는 여인에게 물을 한바가지 청했는데 물위에 나뭇잎을 띄워 줬다. 이성계가 무슨 짓이냐고 하자 갈증으로 급하게 마시면 탈이 날까 그랬다고 한 일화가 있는데 이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 바로 신덕왕후다. 실제인제는 모르겠으나 이 일화의 주인공은 여러 사람이라 지혜로운 여인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것 흔한 이야기 같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


신덕왕후는 정몽주가 이성계를 제거하려 했을 때 급히 이방원을 보내 구하기도 했고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을 때 분노했던 이성계를 만류하기도 할 정도로 수완과 결단력, 대담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방원과의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성계가 왕이 되자 조선의 첫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어미의 욕심은 어쩔 수 없는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역사적으로 늘 자기 아들에 대한 왕위계승 욕심이 문제가 되는 일이 많았는데 신덕왕후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전과 연합을 해 차남 의안대군을 왕세자로 만들었고 이는 신의왕후 자식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야심가였던 이방원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신덕왕후를 아꼈나보다. 아니면 휘어잡혀 있었던지...


<왕비가 되었으니 어미로서의 욕심도 생긴듯...>


상황이 이러니 왕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방원과의 사이도 이때 틀어진 것 같다. 신덕왕후는 죽으면서도 이방원이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할지 걱정했다. 신덕왕후가 죽자 태조 이성계는 몹시 슬퍼하며 흥천사라는 절을 지었다. 이렇게 극진했으나 왕세자를 지키지는 못했다. 


<신덕왕후의 죽음으로 이성계가 많이 슬퍼함>


역시나 신덕왕후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유명한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분노한 신의왕후의 자식들은 의안대군을 포함한 신덕왕후의 아들을 모두 제거하고 딸인 경순공주는 여승이 되었다. 이 난 중 권력을 장악한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된 후에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켰고 능도 양주로 이장을 시켜버렸다. 봉분도 없어 묘지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게 만들었다. 개국 공로가 있는 왕비의 사후로서는 비참한 모습이었다.



후에 신덕왕후는 다시 복권되기는 했다. 조선 현종때 우암 송시열의 상소를 받아들여 신덕왕후의 묘는 다시 정릉으로 옮겨지고 종묘에 왕비로서 모셔졌다. 신덕왕후가 복권 되는 날 엄청난 비가 쏟아져 사람들은 신덕왕후의 원혼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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