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고려 공예태후(황후)의 이유있는 아들 차별

고려 공예태후는 고려 인종의 비다. 성은 임씨고 원래 이자겸의 두딸이 인종의 비였으나 이자겸의 난으로 쫓아내고 임씨를 맞이했다. 공예태후는 원래 왕자를 낳기 위해 데려온 씨받이 궁녀였다. 그러나 아들을 잘 낳았는지 왕비로 책봉되었다. 운도 따랐던 듯.


<드라마 무인시대 속 공예태후>

인종의 사랑을 받았는데 5아들을 두고 4명의 공주를 낳았다. 어마어마하다. 아무래도 궁녀로 들여올때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는지 확실히 조사를 한 듯. 그러니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다섯 아들 중 장남은 후에 의종이 되고 차남은 대령추다.



그런데 공예태후는 사람을 잘 보고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 싶다.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총명하고 사려깊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인종이 장남을 태자로 책봉했지만 공예태후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들을 차별한 것인데 둘째를 더 좋아했다.


<차별은 한이 되기도 함...>


그러나 한나라의 황후가 누굴 더 좋아했다 편애했다 하는 것은 그리 옳은 판단은 아닌 것 같고 공예태후는 나라를 이끌 왕의 재목으로 차남인 대령추를 더 신뢰한 것 같다. 장자는 왕의 재목이 아니라고 여긴 듯 하다. 지속적으로 대령추를 태자로 하자고 인종에게 주장했다.



그러나 인종은 장남이 있는데 차남을 태자로 삼을 수 없다며 공예태후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인종의 우유부단함도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인종이 죽자 장자인 현이 왕위에 올라 의종이 되었다. 당시 나이 20세였다. 20세면 그리 어린 나이가 아니고 제대로 된 왕의 재목이라면 충분하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데 의종은 공예태후의 안목대로 왕의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왕이되자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환락을 즐겼고 환관들을 신뢰해 환관정치가 횡행했다. 대령추는 역모로 몰려 유배를 보냈고 귀양살이를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니 혼란스러워졌고 급기야 정중부에 의한 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무신정권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의종을 폐한 후 다음왕은 셋째가 되었다. 이가 명종이다. 



공예태후가 아들을 차별했다고 하나 이는 그녀의 안목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왕이 될 재목은 둘째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인종에게 계속 권했던 거고. 그렇지 않고서야 한 배에서 나온 자식을 그토록 차별할리가...  하지만 차별은 안좋음.






- 티움 프로젝트 글을 페이스북, 네이버,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 RSS에서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 공감 하트♡ ) 누르시는 당신은 센스쟁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