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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진실, 사건은 진짜일까?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만큼 유명한 왕은 아마도 의자왕일 것이다. 그것도 나쁜쪽으로. 의자왕하면 삼천궁녀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다. 이 의자왕의 삼천궁녀 사건은 진짜일까? 정말 의자왕은 호색한이었을까?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 그리고 이렇게 한 나라가 망하가 되면 그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 왕은 온갖 누명을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그러니 의자왕도 누명을 썼을 가능성이 많아지는데 놀랍게도 역사에 이런 기록은 없다. 


왕의 칭호는 왕 사후에 사가들에 의해 붙여진다. 의자왕은 의자에 앉아 궁녀를 거느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롭고 자애로운 왕이었다는 뜻이다. 방탕스러운 생활을 한 색마로 알려진 의자왕이 왜 의롭고 자애로운 왕일까?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 



의자왕은 실제 통치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찾기 위해 신라를 많이 공격해서 40여개 성을 빼앗았다.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의 성격이 효로서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어 해동의 증자라 불렸다고 되어 있다. 침착하고 사려가 깊어 백성들에게 명망도 높았다고 한다. 이런 왕이 망국의 마지막 왕이라는 이유로 온갖 누명을 뒤집어 쓰는 건 안타깝다.



삼천궁녀도 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우선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인구대비 젊은 여성의 수를 만오천정도로 추정하는데 이중 3천이 궁녀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리고 백제의 궁궐 터는 삼천명이나 기거할 공간이 없다. 결정적으로 위에 말했듯이 삼천궁녀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없다.



그럼 삼천궁녀 이야기는 어디서 나온건가. 조선 중기 시인인 문재인의 문집에 백마강부라는 시가 있다. 여기에 보면 '구름같은 삼천궁녀 바라보며 후궁들의 고운얼굴에 눈이 어두웠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천은 많다는 시적인 표현일 것이다. 또는 조선시대 왕들에 대해 제대로 통치해야 된다는 경고의 의미로, 망국의 왕에 대해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 건 아닐까? 



그러나 이런 조선시대의 시로는 대중적으로 될 수가 없다. 삼천궁녀가 대중화 된 건 가요에 의해서다.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낙화암과 삼천궁녀에 대한 가요들이 수십곡이나 되었다. 망국의 한을 노래로 풀었고. 이것이 또 망국의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고 이렇게 대중속에 파고 들었다. 



결국 의자왕은 실정으로 백제의 국력을 약하게 만들어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다. 신라의 계략과 당나라의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욕망이 결합한 힘에 의해 망했고 당나라에 끌려가 타지에서 억울하게 죽었다. 그리고 사후 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방송등에서는 많이 다루기는 했지만 이제 교과서 등에도 표기하여 의자왕의 누명을 좀 벗겨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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