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잡은 독재자들이 착해지는 것은 드문일이다. 권력에 취해 재화, 군사 등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휘두르게 되는데 그중에는 여자 문제도 있다. 자신의 힘으로 여자를 취하는 추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재자들이 일편단심이었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여기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세계 유명한 독재자들의 여성편력 이야기가 있다.
무가베
짐바브웨의 독재자로 30년동안 통치를 했다. 그의 첫번째 부인 샐리가 암으로 죽어가는 동안 무가베는 젊은 비서인 그레이스를 자신의 퍼스트 레이디로 바꾸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샐리가 죽기전에 이미 그레이스는 무가베의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무가베의 혼외자식을 가진 유일한 여자가 아니었다. 고등교육부 장관인 오파는 샐리가 운명을 달리한 시기에 무가베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녀의 전 남편에 따르면 한밤중에 회의를 한다며 대통령과 자주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마오 쩌둥
마오쩌둥과 장칭
마오 쩌둥은 중국의 독재자다. 성병과 마약에 중독되었었던 성년기의 마오 쩌뚱은 여러명이 어린 소녀들을 침대로 끌어들인 것으로 악명높다. 그가 가장 좋아한 소녀는 14세의 첸 여사로 공산당원의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욕구를 풀기위해 그녀를 선택했다. 미모의 4번째 아내 장칭은 남편의 성공을 바랬기때문에 남편의 그런 행동을 우려했다. 그녀가 첸을 추방하자 마오 쩌뚱은 슬퍼했는데 그녀는 첸을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 버렸다.
사담 후세인
후세인은 금발을 좋아해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이 68세의 나이에 만난 마리아 파리 램소스는 31세에 불과했다. 그녀는 멋진 금발을 자랑했는데 이는 사담의 취향이었다. 사담은 그녀를 스토킹했고 협박을 했다. 그녀는 도망치려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사담의 금발 사랑은 유명하다. 자연스러운 갈색 머리였던 첫번째 부인인 사지다 탈파는 결혼 후 점점 금발로 변해갔다. 두번째 부인인 사미라 샤반다도 역시 금발이었다.
무솔리니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여성들을 거칠게 다뤘는데 그와 관계하는 여성들을 매춘 여성들과 동일시했다. 그는 정복을 좋아하며 관계를 가진 여성을 때려 눕히고 바닥에 던졌다. 그는 그의 자녀를 낳은 무수한 여인들 중 29세의 클라레타 페다치에게만 애정을 나타냈다. 그의 아내가 이탈리아에서 도망가는 동안에도 클라레타와 지내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고 있었다. 1945년 4월 둘은 총에 맞아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졌다.
김정일
김정일의 여성편력은 유명하다. 선발된 소녀들이 기쁨조로 편성되었는데 춤과 노래를 하기도 하고 김정일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활동했다. 여성에 대해서만 아니라 가학적인고 폭력적인 것을 좋아해 맹수들의 시합이나 격투를 즐기는 변태적인 행위를 보였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은밀히 일본 여자 마술사인 프린세스 덴코에 빠졌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딴 극장을 만들고 그녀의 피규어를 모았다. 그녀가 북한에 수중 탈출 마술 공연을 왔을 때 그녀를 위해 탱크의 물을 에비앙으로 가득 채우라고 명령했다. 덴코가 떠날 때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할 때까지 못가게 하기도 했다.
덴코가 일본에 돌아간 후에도 북한의 간첩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봤다고 덴코는 주장했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김정일은 어머니를 일찍 여읜것에 대한 트라우마때문에 버려지는 것에 대해 고질적인 두려움으로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다고 한다.
이디 아민
이디 아민은 우간다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독재자로 5명의 퍼스트 레이디를 가졌다. 첫번째인 말리아무는 그녀의 동생과의 분쟁과 여러 이유로 이혼했는데 같은 해 의심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두번째 부인 케이 아드로아도 이혼했는데 그의 사촌과 바람이 나서다. 후에 캄팔라의 물라고 병원에 그녀의 산산조각난 시체가 들어왔을 때 이디 아민은 그의 아이들과 가서 그것을 확인했다.
이디 아민이 가장 좋아한 아내는 다섯번째 아내인 사라 쿄라바였는데 그녀는 2015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켰다. 그가 사라를 만난건 우간다 군대의 자살기계연대 밴드에 댄서로 있던 19살때였다. 그녀에게 반한 이디 아민은 그녀가 다른 뮤지션과 사귀고 있었고 그 뮤지션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남자친구를 제거했으며 아기를 자신의 아기로 선언했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와 12년간 사귀었던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여인은 아니었다. 히틀러는 그의 배다른 남매인 안젤라의 딸인 겔리 나우바와 사귀였다. 조카와 사랑을 한 것인데 겔리는 변태적인 히틀러의 성행위를 참아주었다. 그건 히틀러의 얼굴에 소변과 대변을 보게 하는 이상한 취향이었다.
나중에 에바 브라운의 편지를 발견하고는 히틀러의 권총을로 자살을 했다. 다른 언론의 추측으로는 겔리가 비엔나에서 유대인 애호가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히틀러가 자살을 하도록 강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겔리가 죽자 히틀러는 그녀의 흉상과 그림으로 자신의 주변에 두고 매일 신선한 국화를 그녀의 침실에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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