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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측천

측천무후 중국 유일의 당나라 여황제 중국 역사에서 섭정을 한 황후는 많다. 그리고 왕을 치마폭에 넣고 국정을 마음대로 한 여인들도 많다. 하지만 황제가 된 여자는 당나라 측천무후가 유일하다. 당고종의 2번째 황후로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고 나라를 주물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섭정이나 실세들이 안좋게 생을 마감한데 비해 측천무후는 권력을 놓치지 안고 천수를 다 누렸다. 이것 만으로도 대단한 여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잔혹한 악녀이기도 하다. 무측천이라고도 부르는 측천무후는 당의 개국공신이었던 무사확의 차녀로 태어나 당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했다. 이름은 무조. 개국공신의 자녀가 왜 후궁으로 들어가나 생각하겠지만 그때의 후궁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종의 벼슬이었다. 후궁이었지만 당태종에게 여자로서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건 측천무후가 똑똑하.. 더보기
상관완아, 원수인 측천무후까지 반하게 만든 재녀 중국 고대 4대 재녀 중 하나라는 상관완아는 664년 지금의 중국 하남성 지역에서 태어났다. 상관완아는 용모가 빼어나고 남달리 총명했다고 한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상관의인데 할아버지도 당태종때부터 시와 글씨체로 이름을 떨치고 재상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하지만 측천무후(무측천)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처형당했다. 그때 반란죄는 일가친척까지 모두 처형하게 되므로 상관의와 가족 모두가 처형되었다. 하지만 갓난아기였던 상관완아와 그의 어머니 정씨는 외가쪽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할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상관완아는 시문에 능하고 총명하였다. 14살에 궁의 노비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측천무후가 그녀의 소문을 듣고 불렀다고 한다. 그녀의 글솜씨에 반한 측천무후는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그런 그녀를 측천무후가 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