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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명나라 가정제의 엽기적인 행위와 임인궁변

가정제는 명나라 11대 황제로 묘호는 세종이다. 정덕제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올랐는데 성정이 변덕스럽고 폭력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도교에 빠져 여색을 밝히고 궁녀들을 괴롭힌걸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생긴 임인궁변이라는 희대의 변고까지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명나라 가정제>

가정제는 원래 병약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도교를 신봉했다. 환관의 주선으로 도교에 풀 빠졌는데 스스로를 신선이라 칭했다. 아마도 병약했던 것에 대한 불안감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여기서 그치면 좋은데 엉뚱한 것들을 추구했다. 불로불사의 단약을 만든다며 궁녀들의 생리혈을 체취했다. 궁녀가 거부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를 때리며 괴롭혔다. 여색에 빠져 있으면서 학대까지 하니 궁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궁녀들에게 무슨짓을...>


이 단약을 자신만 먹은 것은 아니고 황후에게도 먹였다. 그 중 두번째 황후였던 장씨는 가정제가 만든 단약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출되어 냉궁에서 병사했다. 첫번째 황후였던 진씨는 투기가 심하다하여 가정제가 발로 걷어차 복중의 아들과 함께 절명했다. 이처럼 여자는 황후나 궁녀를 가리지 않고 학대했다. 



이에 궁녀들이 견디지 못하고 양금영 등 16명이 황제를 목졸라 죽이려 했다. 이 사건이 임인궁변이다. 얼마나 괴롭혔으면 왕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을까. 그러나 가정제의 황후 방씨가 이를 발견해 황제를 구해주었다. 암살을 시도했던 16명의 궁녀들은 모두 능지처참을 당했다. 그런데 방황후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다. 궁녀들을 죽이면서 은근슬쩍 황제의 애첩도 같이 죽여버렸다. 


<능지처참은 사지를 찢어 죽이는 무시무시한 형별>

나중에 가정제는 이를 알고 크게 분노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나중에 황후궁에 불이 나자 끄지 말라고 해서 방황후가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뒤에 후회를 하고 방황후를 자신이 죽은 뒤 같이 묻어달라고 했다고는 하나 가정제의 성정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어쩌면 불도 가정제가 지른 것이 아닐까?


<제 아무리 고매한 종교라도 정치와 결탁되면 타락하기 마련>


도교를 이런 곳에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도교의 제문을 잘 만드는 엄숭이라는 사람을 재상으로 발탁할 정도로 도교만을 광신했다. 재상이 된 엄숭은 20년이나 국정을 전횡했다. 왕이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리 없었다. 뇌물이 만연하고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나라를 이렇게 말아먹고 수은 같은 중금속 가득한 선단을 먹으면서도 명줄이 긴지 장수를 한 편이다. 거의 환갑의 나이까지 살고 죽었는데 당시로서는 꽤 오래 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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