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전쟁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다. 원래의 허리우드 영화라면 위험에 빠진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최고의 전투요원들이 차출되어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또 몇몇의 희생을 거치며 감동을 준 후 멋지게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미국만세를 보여주고 끝을 내야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런 전형적인 미국 전쟁영화를 과감히 깬 영화다. 초반부터 영화사에 남을 엄청난 전투씬을 보여주는데 진짜 전쟁이라면 이렇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격렬한 전투씬을 보여준다. 전개가 되고 하일라이트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영화의 모든것을 담겠다는 듯한 전쟁씬이다.
진짜 실감나는 상륙전 장면
영화가 계속되면서 주인공들의 멋진 모습이 아니라 전쟁의 잔혹함, 비합리, 비인간성, 미친짓, 병신같음을 계속 보여준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했던 얘기가 이것이다. 겨우 일병 한명 구하려고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병력을 보내는게 말이 되냐고. 아마 미국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시종일관 전쟁의 잔혹함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아들들을 다 잃고 한명만 남은 어머니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결정이 아니라 이것을 이용하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느낌이다. 마지막 장성의 나레이션에서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말도 안되는 작전이지만 전쟁의 도구일 뿐인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정당함이 없음에도 사지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업햄의 말처럼 모두 미쳤다. 결국 업햄도 전쟁의 광기를 피할 수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도 슬프고 두렵다
작전은 성공이다. 결국엔 라이언을 구했으니까. 그런데 무엇이 남았나. 남은 것은 결국 전쟁의 희생에 대한 정당성을 설득하는 사람들의 멋진 도구가 생겼을뿐이다. 그 도구를 만들기 위한 희생자들. 자신이 목숨을 부지한 것 떄문에 세월이 지나 백발의 노인이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라이언의 미안함.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에게만 이익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그런 의미에서 정치 영화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며, 전쟁영화는 멋이 아니라 반전을 담아야 한다. 전쟁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떠들어대고 자꾸만 대립구도를 만드려는 위정자들. 반성해야 한다. 전쟁은 이렇게 위험하고 허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