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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당나라 옥진공주 도사가 되다

당나라의 옥진공주는 양귀비와 놀아난 황제로 유명한 현종의 여동생이다. 이 옥진공주는 출가하여 도가의 여도사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도가에서 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도사라고 했다. 당에서는 도가 사상이 유행하여 도사들이 많았는데 황족도 출가를 하여 도사가 되는 일이 있었다. 옥진공주도 그런 부류로 출가해서 여도사가 되었다. 


중국 드라마 속 옥진공주


당 현종이 자신의 여동생인 옥진공주를 장과라는 도사에게 시집을 보내려 한 것으로 보아 도사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옥진공주는 스무살 남짓 되었을 때 스스로 도사가 되겠다고 그녀의 아버지인 당 예종에게 고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옥진공주 중국 미인도

하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옥진공주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며 예종을 설득했고 허락을 얻어냈다. 그렇게 궁을 떠난다고 해서 완전 서민처럼 생활한 것은 아니다. 어디 산속으로 들어가 도를 닦으며 고행을 한건 아니고 공주의 신분답게 장안성 밖에 옥진관이라는 커다란 도관을 지었다. 



그 도관이 완성되자 그곳에 들어갔고 가무녀들과 궁녀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말이 도관이지 일종의 여자 궁궐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사가 되었지만 생활은 시집을 간 다른 공주들보다 훨씬 풍요롭고 나은 생활이었다. 많은 인사들을 불러 술자리를 즐기고 남자들과 놀아났다. 말이 도사지 그냥 여왕같은 생활을 했다.



다른 공주들이 이 모습을 보니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이후의 역대 왕들의 공주들도 줄줄이 도사가 되겠다고 출가를 한다. 여도사가 되는 길은 사실상 자유롭고 방탕하게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즐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이것을 마다하겠는가. 


시선 이백


이 옥진공주의 주위 사람 중 가장 재능을 아낀 인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시선 이백이 맞다. 그녀는 이백을 오빠인 현종에게 천거하여 벼슬을 시켜줬다. 이백은 현종과 양귀비를 위해 시를 지으며 두사람에게 총애를 받았다.


경정산의 옥진공주 동상


그러나 권력자들의 모함을 받아 다시 도관으로 돌아왔다. 이 일에 옥진공주는 분노하여 현종에게 상소를 올리고는 공주의 직책을 버렸다. 안사의 난 이후 그녀는 경정산에 은거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도가의 사상처럼 신선이 되었을라나... 경정산이 옥진공주의 무덤이 있으니 그런것 같지는 않다. 이백은 이 옥진공주가 있는 이 경정산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둘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같이 도를 닦은 벗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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