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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경희궁 회상전 왜 사라졌을까?

1899년부터 20년간을 한국에 머물렀던 미궁의 간호선교사 새디 웰본이 수집했던 사진을 그녀의 손녀인 프리실라 웰본 에비 여사가 한국의 국립민속발물관에 기증했다. 이 사료에는 희귀 사진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는데 경희궁 회상전 사진이 있었다. 


경희궁 입구 흥화문


경희궁은 경복궁이나 창경궁에 비해 지명도가 약한데 이는 이궁이었기 때문이다. 이궁은 태자궁 또는 세자궁의 다른 말이다. 조선후기 광해군때 지어진 궁으로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다. 이를 영조때 경희궁으로 바꿨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궐이라고 불렀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합해서 동궐이라고 불렀다.


일제시대 통감부 중학교를 짓기 위해 헐리는 경희궁.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불탄 후 복구되기까지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경희궁은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해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꽤 규모가 있었지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상당수 건물을 옮겨갔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지으며 숭정전 등 경희궁의 주요 전각들이 헐려 나가고 면적도 축소되었다. 

이때문에 경희궁 회상전도 사라지고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경희궁은 무엇일까? 이는 1987년 서울시에서 경희궁지를 발굴하여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했고 2002년부터 시민에게 공개한 것이다. 처음에는 공원으로 지정한 후 서울시립미술관과 박물관을 짓기로 결정한 후 경희궁터의 발굴 조사를 통해 복원가능한 건물은 복원하고 박물관의 위치를 결정했다.


기본적인 궁만 복구되고 박물관이 들어섰다

그 후로 사료가 없어 경희궁의 원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이번 기증으로 경희궁 회상전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에는 회상전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또 다른 회상전 사진과 비교해서 파악을 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경희궁 회상전.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우환이 있었지만 이처럼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궁궐 또한 팔려가거나 훼손되었다. 경희궁뿐 아니라 경복궁 등도 마찬가지였다. 창경궁은 오랜기간동안 동물원이었다는 것을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경희궁 회상전 사진처럼 가치있는 역사적 자료들이 모여야 제대로 된 복원도 하고 그때의 훼손된 가치있는 문화재도 복원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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