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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무령왕릉 발굴, 한국 고고학의 명암


20세기 한국 고고학계와 역사학계를 뒤흔든 고고학 최고의 발굴성과라면 단연 '무령왕릉'의 발굴이다.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시 송산리 백제 고분군에서 장마철 침수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작업중 한 인부에 의해 전혀 사람들의 손이 닫지 않은(도굴의 피해가 없었던) 벽돌 무덤이 발견되었다. 


급하게 발굴 조사단을 구성하고 입구를 뜯어서 열자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이라 씌여진 지석이 발견되었다. 1442년만에 무령왕과 왕비가 긴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무덤안에서는 108종 4687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역사적인 무덤의 발굴임에도 불구하고 이 발굴작업은 사상 최악의 졸속발굴이라는 수치스러운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발굴해야 한다



영화같은 곳에서 고고학 발굴 현장을 봤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흠이 생길까 솔로 먼지를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장기간 발굴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무령왕릉 발굴은 그러지 못했다. 발굴현장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취재진과 구경꾼들이 통제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잘도 국민들을 통제하던 시대에 왜 이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령왕릉


발굴단은 철야작업 하며 발굴을 했고 급하게 하느라 큰 유물들만 대충 수습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놀랍게도 나머지는 흙과 풀뿌리가 엉킨채로 자루에 쓸어 담았다. 이해가 가는가? 하나하나가 국보에 준하는 값어치를 지닌 유물들일텐데 마치 쓰레기 담듯이 자루에 담은 것이다. 이 사상 최악의 발굴 작전(?)은 17시간만에 종료되었다. 17일도 짧은데 17시간.





이런 졸속발굴에도 여기서 나온 유물들은 특별전을 열 만큼 엄청난 유물들이었다. 이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들은 당시 백제의 화려했던 금속문화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무덤은 놀랍게도 석실 안에 등불을 켜둔채로 밀봉을 해 안을 무산소 상태로 만들어 금속의 부식을 막았다.  그로 인해 원형이 그대로 보존 된 금속 유물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화려한 금장식품


아마 이 무덤이 지금 발견된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학계의 관행들로 봤을 때는 또 아주 잘 할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게 사실이다. 최고의 발굴이라는 무령왕릉에 과연 최고의 연구성과를 냈는지는 학계가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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