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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이 된 파락호 이하응 조선 말기의 절대적 권력자 하면 흥선대원군이 떠오른다. 흥선대원군은 후대의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를 늦췄다는 원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도 같다. 또 하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파락호다. 파락호는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 말한다. 흥선대원군의 본명은 이하응. 하지만 흥선대원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차남인 어린 고종을 대신해 국정을 이끈 추존왕이다. 권력을 잡기 전에는 파락호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정도까지 막장 생활은 아니었다는 게 정설이다. 기방을 출입하다 욕을 당하고 상갓집의 개라고 불릴 정도였다는데 사실 이하응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의해 .. 더보기
나합부인 양씨 흥선대원군도 굽신하게 만든 권력 나합부인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기생이 된 인물로 조선말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추였연 김과근의 첩이다. 성이 양씨인데 김좌근의 애정이 거의 종교수준이라 총애를 받아 첩인데도 불구하고 세도를 누렸다. 나합부인을 통하지 않고서는 벼슬을 할 수 없다 할 정도로 권세가였다. 우리나라 몇대 요부, 요녀를 꼽을 때 나합도 들어간다. 도대체 조선말에 무슨 그리 권세가가 많고 부패가 많았는지 망한것이 이해가 갈 정도다. 나합부인이 얼마나 권세가였냐하면 나합이 이름이 아니다. 나주 출신의 정승이라하여 그렇게 불렀다. 합(閤)은 정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때문이다. 그만큼 권세가 있다는 얘기인데 김좌근이 나합부인에게 왜 세상사람들이 나합이라고 부르냐고 묻자 양씨는 합은 조개로 의미로 여자를 낮춰 부르는 의미로 자신을 그렇..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