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황후

북송의 유아 중국 최초의 수렴청정 황태후 중국역사에서는 여러 황후들이 수렴청정을 했는데 가장 처음으로 한 황후가 북송의 장헌명숙황후다. 이름은 유아. 유황후라고도 부른다. 보통 수렴청정하면 외척과 권력욕 등이 얽혀 안좋은 경우가 많은데 유아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황후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고 정치도 잘했다. 유아는 먹을 거리를 걱정할 정도의 가난한 집의 아이였다. 하지만 천한 집안은 아니었고 벼슬을 지냈지만 쇠락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유아는 총명하고 기민한 아이였고 예쁘게 성장했다. 유아는 전쟁 통에 북을 치며 기예로 먹고 살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 대장장이 공미를 만났고 같이 수도인 개봉으로 갔다. 유아는 여기서도 기예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는데 양왕 조항(후에 송진종)은 유아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예쁘고 총명한 유아에게 조항은.. 더보기
후한 화희황후 착한 여자의 착한 정치 화희황후는 후한 화제의 두번째 황후다. 후한 왕조에서 임조칭체한 두번째 황태후다. 임조칭제는 황제의 명령과 같이 황태후의 명령을 제로 칭한다는 의미로 황제의 권력을 누리는 통치행위이다. 수렴청정이나 섭정과 동일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화희황후의 성은 등씨 이름은 '수'이다. 어린나이에 총명하고 유학에 관심을 보였다. 미색이 출중하여 궁에 들어가제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성품이 겸손하고 공손하며 행동을 늘 조심했다. 원래 화제황후 음씨는 이런 등수를 질투하여 무고하고 저주했다. 그로 인해 오히려 황제의 미움을 샀고 쫓겨나는 통에 등수가 황후가 되었다. 등수가 다섯 살 때 이런 일화가 있다. 태부의 부인이 그녀를 사랑해서 몸소 머리카락을 잘라 주는데 눈이 어두워 등수의 이마를 다치게 했다. 하지만 등수는 .. 더보기
진나라 한무제와 무사황후 위자부 진나라의 한무제는 아주 소문난 바람둥이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는데 왕이니까 그렇다 치고. 그 여인들의 결말이 좋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무제와 무사황후 위자부의 이야기도 그렇다. 위자부는 몸종에서 황후가 된 케이스로 역시 그로 인해 온가족이 권력을 누렸지만 역시 결말이 좋지 못하다. 하루는 무제가 누이인 평양공주의 집에 갔다. 거기서 평양공주의 노비인 위자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었다. 그는 집 화장실에서 관계를 맺었고(물론 권력에 의한 강압이겠지) 이를 안 평양공주는 무제에게 위자부를 내줬다. 한무제 무제는 위자부를 후궁으로 삼았는데 황후였던 진아교는 질투에 위자부를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무제는 진아교의 덕에 황제가 된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안되는 법. 위자.. 더보기
독고가라 문헌황후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보통 역사에 황후들이 거론되는 건 악녀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니면 여장부이거나. 중국 수문제 양견의 정실부인인 독고가라(獨孤伽羅)는 독특하게도 존경받는 정치가 스타일의 황후였다. 여자가 차별받던 시대여서 그렇지 남자로 태어났다면 능히 활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가능한 시대임에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실행한 사람이었다. 독고가라는 수문제의 통치에 크게 관여를 했는데 현명하면서도 엄격하여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했다. 정치적으로 백성들에게 인자하고 존경받는 황후였다. 원로대신들에게 예를 갖췄고 딸들의 몸가짐을 단속했다. 그녀는 정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내었는데 문제는 황후의 의견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후에 양견의 수나라가 안정적이 되어 향락에 빠지자 계속 설득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