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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축지법을 썼다던가... 보부상 이용익 이용익은 대한제국 시대의 관료이면서 독립운동가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본관은 전주고 이성계의 이복형인 완풍대군 이원계의 후손이다. 집안은 그렇지만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185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났는데 집이 가난해 보부상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과료로 출세한 데는 임오군란 당시 민영익을 구하고 민비의 구출에 도움을 준 공로로 민씨 정권의 비호를 받아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출세를 위해 민씨 측에 붙었지만 무조건적인 기회주의자는 아니었는지 친일파는 아니었고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다. 그는 보부상이었지만 이건 생계의 수단이었을 뿐이고 금광 찾는 것에 빠져 있었다. 버려진 금광에서 노다지를 캐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생계가 막막해지면 보부상일을 했다. 이렇.. 더보기
영화 박열. 박열을 보러 갔다가 가네코 후미코를 알고 오다 영화 박열. 아마도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계속 모르고 살았을 인물이 아닐까? 약산 김원봉처럼. 북으로 넘어갔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쉬쉬하고 있었고 그들의 업적도 감춰졌었다. 물론 박열은 김원봉보다는 덜 그런편이기는 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이기도 하고. 이제 좀 누그러지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아직 멀기는 했다. 이런 현실에는 박열과 미즈노의 영화속 대사가 딱 맞는 것 같다. 박열이 덮으려 한다고 덮어질 것 같냐고 하자 미즈노가 말한다. "너같은 놈이 자꾸 나오니까 우리가 더 치밀해지는 거야." 그들은 정말 치밀했고 그 후손들도 역시 치밀하게 감추어 왔다. 이제 겨우 그 일부가 드러났을 뿐. 놀랍게도 여전히 그 추종자들은 스스로 일본인이라 생각하며 일본말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