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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덕녕공주의 사랑 강윤충과 배전 대부분의 나라들이 망하기 전에는 심각한 타락의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고려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원나라에 완전히 점령 당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신하국이 되어서 왕들은 왕자일대 원나라에 가서 생활을 하고 왕이 된 후에는 이름에 충(忠)자를 붙였다.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감시를 위해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했다. 고려 28대 임금이며 막장 오브 막장인 충혜왕도 다르지 않았다. 충혜왕(결혼한 충혜왕에 대해서는 같이 읽으면 좋은 포스팅을 참고하면 된다)이 원에 있을 때 결혼했던 공주는 덕녕공주다. 덕녕공주는 원 세조 쿠빌라이의 증손자인 진서무정왕 초팔의 딸이다. 공주였지만 높은 위계는 아니었다. 그래도 정략결혼은 정략결혼. 사실 공민왕처럼 원나라 공주를 열렬히 사랑한 왕도 있지만 정략결혼인 .. 더보기
고려 신돈 요승인가 개혁가인가 신돈은 참 말이 많인 인물이다. 고려말 혜성처럼 나타나 무너져 가는 고려를 일으키기 위해 개혁을 했으나 비참하게 처형을 당하고 후대에는 요승으로 욕을 먹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후에는 더욱더 신돈을 비난하고 고려 우왕의 아버지가 신돈이라며 적통을 부정했다. 신돈은 서자로 태어나 승려가 되어 떠돌며 살았다. 승려로 살면서 신도의 신분을 차별하지 않아 모두에게 칭송받는 승려가 되었고 개경 헌화사의 주지가 되었다. 이렇게 명망받는 승려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나 운명과 그의 개혁적인 성향을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태후에 의해 공민왕에게 소개되었고 그의 시국관이 공민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돈은 승려였지만 성격이 독특하고 기존 사회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행태를 보였다. 어쩌면 원의 간섭을 벗어나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