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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조선 하륜, 이방원의 킹메이커

조선의 하륜의 고려말 신진사대부로 시작해 조선초기까지 벼슬을 한 인물로 일흔까지 살며 두 왕조의 아홉임금을 섬겼다. 이방원의 킹메이커 역할을 했는데 이방원보다는 20살이나 많다. 관직의 기복이 심했는데 재주와 출세욕은 있었으나 고려 말에는 정몽주, 조선 초에는 정도전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있어서 올라가는데 난항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정치는 줄.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이 꽉 잡고 있는 정권에서는 하륜이 능력을 펼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정도전은 하륜을 무시해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에 하륜은 이성계의 5남인 이방원과 연을 맺었는데 이것이 신의 한수. 태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하륜은 대단한 책략가였던 듯 싶다.


<욱룡이 나르샤의 이방원과 하륜


하륜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정도전이 아무래도 하륜과 이방원이 어울리는 것이 꺼름직했는지 하륜을 떼어놓기 위해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이에 이방원이 송별연은 베풀었는데 하륜이 취한척 이방원의 옷에 술을 쏟았다. 이방원이 화를 내며 나가자 하륜은 사과하며 이방원을 쫓아나가 독대를 한다. 주변의 눈이 있어 둘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계책을 세운 것. 이 자리에서 이방원에게 결정적인 책략을 알려줬다.




하륜이 이방원에게 일러준 계책은 선수를 쳐 다른 왕자들의 사병을 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숙번을 이방원에게 추천했는데 이숙번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이방원의 호위병력으로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다른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해 반란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차례 이방원이 왕위로 올라가는데 공을 세웠다.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면서 좌명공신 1등에 포상되었다. 


<하륜이 없었다면 이방원이 왕이 될 수 있었을까?>

태종이 즉위하고 재상의 반열에 오른 하륜은 처세술만큼이나 꽤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태종의 개혁정책을 계획 집행하고 정치개혁, 관제개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태종이 실시한 군제개혁, 호패법 시행, 조세제도 정비 등도 하륜이 직접 계획을 입안하고 집행할 정도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조선초 법률인 경제육전의 편찬에도 참여했는데 아마도 조선 최초 법전인 조선경국전을 정도전이 지었던거에 대한 반발이나 경쟁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한자와 이두를 섞어 만든 조준육전을 하륜의 주도로 순한문으로 만들고 모순된 부분들을 다음었는데 이를 속육전 또는 하륜육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후에 경국대전의 바탕이 되었다.


<처세술이 워낙 뛰어나니 이런 칼럼까지 나온다>


모든 일처리를 빠르고 거침없이 실행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탐욕도 많아서 백성을 동원해 간척사업을 하고 땅을 사유화하기도 했다. 노비들에게 벼슬을 팔아먹고 인재추천도 막가파 식으로 했으나 태종을 만든 킹메이커라 태종이 눈감아주는 경향이 강했다. 말년에 말실수도 많이 하고 태종에게 질책을 들을만한 일들도 많이 했다. 살면서 많은 스캔들과 부패가 있었지만 결국 태종이 계속 보호한 덕에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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