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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어사 박문수 영원한 암행어사

박문수는 조선시대 인물로 문과에 급제해 사관이된 문신이지만 우리에게는 암행어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암행어사로 활동한 것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암행어사로 알고 있는건 이때 많은 치적과 공훈을 세웠고 이런 활약상 때문인지 조선 역사에서 구전설화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이 설화들는 보통 동화에서 많이 다뤄졌고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암행어사 하면 박문수, 박문수 하면 암행어사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암행어사라는 것이 박문수가 사실은 한적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박문수가 한 어사는 별견어사라는 것이고 지방관 시절 훌륭했던 행적들이 결합해 암행어사 박문수의 이야기가 구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어린이 동화책에 많이 소개되었다>


어쨌거나 박문수는 암행어사 일화만큼이나 꽤 독특한 인물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자랐는데 이로인해 어렸을 적에는 불량했다고 한다. 보통 천부적인 자질의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급제를 하지만 박문수는 33살에 급제를 했다. 




박문수의 급제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야사가 있는데 박문수가 한양에 시험을 보기 위해 올라가고 있을 때 귀신이 변한 초립동자를 만나게 된다. 이 동자는 시험이 이미 끝났다고 박문수에게 얘기하며 과거시험의 시제와 장원급제한 시문을 알려줬다. 그런데 그 시문 중 마지막 구절은 생각이 안난다며 그냥 가버렸다.


<암행어사의 마패>


박문수는 그 기막힌 시문을 보고는 없는 마지막 구절을 채워넣었다. 그런 후 이왕 올라왔으니 한양 어른들에게 인사나 드리고 가자고 하며 올라왔다. 그런데 과거시험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 3일이나 남아 있었다. 시험날 시제를 받아보니 초립동자가 알려준 것과 같았다. 그래서 알려준 완성된 시를 적어내고 장원급제를 했다.  채점관들이 이 시를 보고 귀신의 시라며 불합격시키려다가 마지막 구절만큼은 사람이 썼다고 하여 합격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는 박문수를 높이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사실 박문수는 장원급제가 아닌 전체합격자 41명중 26번째로 합격이 되었다. 벼슬에 오른 후 암행에서부터 관직을 하나씩 올라가며 15년만에 병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다.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와 성실하게 해서 성공한 그야말로 대기 만성형 인물이다.

이후 오르락 내리락 굴곡심한 관직 인생을 살다 1755년에는 나주괘서사건이라는 역모에 휘말린다. 그러나 영조는 박문수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


<어릴적 암행어사 출두요 하면서 탐관오리를 때려잡던게 얼마나 통쾌했던지...>


영조의 신뢰가 어느정도였나하면 박문수를 많이 감쌌는데 왕 앞에서 예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박문수가 아니면 누가 바른말을 하냐며 원래 성격이 그러니 놔두라고 했다. 드라마에서 보듯이 신하들은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박문수는 고 처박고 아부떠는 것보다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며 왕에게 들이댔으나 영조는 이마저도 받아줬다. 대단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박문수가 죽은 후 영조는 영의정를 추증했다. 영조는 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영성(박문수)이며, 영성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나였다. 라는 말을 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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