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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양나라 소종은 양무제의 아들인가 동혼후의 아들인가

양나라의 소종은 양 무제와 숙원 오씨 사이에 난 아들이다. 양 무제의 둘째아들. 소종의 어머니인 오숙원은 원래 남제 동혼후의 후궁이었다. 무제가 동혼후를 죽이고 화제를 황제로 세웠는데 이때 오씨를 취하고 자신이 즉위한 뒤에는 오씨를 숙원으로 삼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숙원이 7개월만이 소종을 낳은 것이다. 이른바 칠삭둥이. 이로 인해 소종이 무제의 아이가 아니라 동혼후의 아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중국 드라마 속 소종>

그런데 무제는 소종을 아들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를 예장왕으로 봉하고 지방의 자사를 겸임시켰다. 그래도 오숙원은 황제의 총애를 잃었다. 의심은 계속되었고 소문도 오랜기간 지속되자 소종은 견딜수가 없었다. 이에 숙원 오씨는 소종에게 차라리 도망가라고 권했다. 아마 오씨도 소종이 무제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하다.



중국의 역사서 위서에는 소종이 자신이 무제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에 친자 확인을 위해 적골법을 사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적골법은 당시 알려진 친자확인법으로 일종의 미신이다. 아비의 뼈에 자신의 피를 떨어뜨려 스며들면 친자라는 것인데 상당히 비과학적인 방법이다. 이의 실험을 위해 소종은 친자관계의 사람을 죽여 실험했다는 엽기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쨌거나 소종도 오숙원도 무제의 친자가 아님을 확신했던 듯 싶다. 소종은 무제의 명을 받아 북위를 정벌하러 갔을 때 국경지대의 성을 지키다 밤에 수행원 몇만 데리고 북위로 망명을 했다. 다음날 성은 북위에 함락되었다. 지휘관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소종은 북위에서 이름을 소찬으로 바꾸고 자신의 친아버지라 여기는 동혼후의 제사를 지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


뒤에 이 소식을 접한 양나라의 무제는 소종을 호적에서 파내버렸다. 소종의 아들이었던 소직도 성씨를 패씨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다시 소직을 복원시키고 영신현후로 봉했다. 소종이 그렇게 했지만 소직에게는 할아버지의 정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키운 정이 더 진한것인 듯. 그리고 소종에 대해서도 그리 박하지 않았다.



뒤에 북위가 혼란에 빠지고 소찬이 지키던 성이 점거되어 사문으로 변장한 후 떠돌이가 되었다. 장백산에 머물다 양평으로 가 그곳에서 병사했는데 말년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오히려 양나라에 그대로 머물렀으면 의심은 받을지언정 왕족으로 삶을 영위했을텐데. 그러나 자신이 무제의 아들이 아닌것이 사실이라면 무제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되므로 그렇게 머무는 것은 힘들었나보다. 뒤에 북위에 의해 묻혀진 소종의 영구를 어떤이가 훔쳐서 양나라로 들여왔는데 무제는 아들의 예로 장례를 지낸 뒤 안장했다. 무제의 연민일지도 모르고 죄책감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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