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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신라 김흠돌의 난과 자눌 자의왕후의 복수

김흠돌은 신라 귀족으로 삼국통일 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워 파진찬에 임명되었다. 후일 반란을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했는데 이것이 김흠돌의 난이다. 김유신의 조카이며, 태종무열왕비 문명왕후 문희의 조카이기도 하고, 또 흠돌은 김유신의 딸인 진광과 혼인했기 때문에 김유신의 사위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집안이고 앞날이 보장된 사람이 난을 일으킨데는 아주 개인적인 일이 있다.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던 김흠돌은 신라에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인품이 사악했다. 그는 또다른 파진찬 김선품의 딸인 자눌을 보고 반해 열렬히 구애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태자 법민과 혼인하여 태자비가 되었다. 자기가 차지하지 못한 여자에 대해 사악한 성품이 발휘되어 문명왕후에게 온갖 험담을 늘어놓아 쫒아내려 했다. 그러나 김흠돌의 권세가 워낙 막강해 어찌하지 못했다.


<자의왕후>


세월이 흘러 태자인 법민이 왕위에 올라 문무왕이 되었고 자눌은 자의왕후가 되었다. 김흠돌은 권세를 이어가기 위해 자기의 딸을 억지로 자의왕후의 아들인 정명과 혼인을 시켜 태자비로 삼게 했다. 하지만 김흠돌의 딸을 자의왕후가 좋아할리가 없었다. 자의왕후는 김흠돌이 지난 날 자기에게 했던 것에 감정이 쌓여 있었기때문이다. 이를 아는 태자도 억지로 혼인은 했으나 태자비를 멀리했다. 결국 김흠돌의 과오로 불쌍한 딸만 소박을 맞게 된 것이다. 



계획과 달리 자신이 딸이 자리를 잡지 못하자 김흠돌은 자신이 그동안 했던 일도 있고 해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들은 이미 죽었고 보호막이 없어졌다. 그래서 김흠돌은 흥원, 진공 등과 함게 반역을 도모했으나 금방 진압당했다. 그리고는 잡혀 죽었다. 김흠돌의 아들도 처형되었고 딸도 역적의 딸이라 하여 궁에서 내쫓겼다. 아비의 잘못으로 자손까지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반란에 가담한 이들이 대부분 화랑도 출신이라 자의왕후는 화랑도를 일시 폐지 시키고 이에 소속된 자들을 병부에 소속시켰다. 그러나 화랑도는 워낙 큰 조직이라 이 조치가 지방까지는 미치지 못하자 다시 부활시켜 풍월주와 국선 이원체제가 아닌 국선 일원체제로 운영하였다.   


<신문왕의 왕권강화에 김흠돌이 반대>


김흠돌의 반란에 대해서 이미 올라갈대로 올라간 권세가 있는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는 견해가 있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문왕과 그 수하가 조작한거라는 견해도 있다. 사랑을 못받기는 했지만 김흠돌이 그래도 왕의 장인인데 굳이 모반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이 반란이 조작된 거라면 그것은 김흠돌을 증오하는 자의왕후와 신문왕이 한 것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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