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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 티움/스타 연예계

배우 우현 이한열 열사 영정 옆에 섰던 놀라운 과거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려졌다. 1987년. 그 자리에 누구나 알고 있을 정치권에 있는 사람이 아닌 의외의 인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배우 우현이다. 여러차례 방송에 나와 밝혔었는데 그때마다 접한 사람들은 놀라고는 한다.


배우 우현이 이한열 영정과 함께 한 것은 우현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기때문이다. 그때 당시의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보가 정치권에 입문하는거라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여러 정치권 인사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배우 우현과 안내상이 있다.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던 때>


안내상은 드라마 송곳에서 명장면을 연출해 왠지 이미지가 맞는 듯 한데 배우 우현은 무한도전 못친소에 출연한 배우 정도로 알아 이미지가 언뜻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곳에서 감초역할을 하는 배우 우현은 예능에 나와 말하는 것을 보면 똑똑하고 자기 생각이 강한 사람이다.


<태극기를 들고 서있는 이 사람이 우현>


우현은 이한열 열사가 쓰러졌을 때 연세대 신학과 재학생으로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다. 영정을 들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회장이었고 그 옆에 우현이 태극기를 들고 서 있었다. 배우 안내상도 같은과 재학생으로 그 옆에 섰다.


<이한열 열사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우상호의원, 태극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우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은 안내상>


배우 우현은 지금의 다소 코믹한 이미지와 달리 비장한 표정으로 태극기를 들고 서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작은키, 작은 체구의 그였지만 이 일을 알고 난 후로 누구보다도 커보이고 대단한 배우로 인식되었다. 이한열 열사, 배우 우현, 우상호 의원이 함께 찍힌 사진은 외신에도 소개 되었다.




우현은 민주화운동으로 구낻를 못가게 되었다. 방송에 출연해 이것이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만 2번 해서 군면제가 되었다.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 항의집회에서 최선봉에 선 인물이니 적극적인 민주화운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와 과거가 달라...>


그는 우상호의원과 나란히 서서 투쟁을 했던 만큼 막역한 사이라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내상과 함게 서울 서대문 갑에 출마한 우상호 지원유세에 동참했다. 어쩌면 지난 정권에서 알게모르게 우현도 탄압받았을지 모르겠다. 나와서 입바른 소리도 자주 했고.



우현은 이런 민주화 경력 외에도 의외의 반전 매력이 있는 배우다. 사실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놀라운건 보통 기득권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사고도 보수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생 가난을 모를 정도로 잘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연세대도 수석입학을 했다. 자신은 외모때문에 놀 수도 없고 운동도 싫어해 공부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런 이유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원래 똑똑했던 것 같다. 거기에 집안 환경도 좋으니 더 잘 할 수 있었을테고.


<삼겹살을 대학에 와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잘생긴 주연급 배우가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맡은 배역들이 그렇게 이미지가 좋은 역할들은 아니지만 실제 예능에 출연한 모습들을 봤을 때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다. 거기에 스마트하기까지 해서 사람을 끄는 매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실제 인성도 좋고 성격도 부르럽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도 곧고 포옹력이나 배려심도 깊은 인간으로서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진국이라고 할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독재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것만 봐도 올 곧은 사람인걸 알 수 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더 활발한 활동으로 대중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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