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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움 컨텐츠/역사와 야사 사이

퇴계 이황의 며느리 사랑

며느리를 사랑했다는게 아니고 시아버지의 사랑

퇴계 이황은 조선의 대 유학자다. 우리나라 천 원권 지폐에 있는 위인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업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다만 유학자이면서 도산서원을 만든 인물로 알고 있다. 그는 이언적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켰고 영남학파의 브레인이다. 이이와 함께 이기론을 형성해 성리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아서인지 문학작품에서는 잘 볼 수가 없다. 이는 정치권에 크게 발 담그지 않고 관직에서 벗어나 은자의 이미지가 강하기때문이기도 하다.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스승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의 알려진 일화 중 특이한 점이 그의 며느리 사랑이다. 특별히 며느리에 대한 것 보다도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대인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황의 도산서원>

그가 처복이 없어 며느리 사랑이 지극했다는 말이 있으나 그것보다는 그의 인격에서 나오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두명의 처를 잃었지만 처에게도 지극했다. 맏며느리는 봉화 금씨였다. 금씨가 이황의 아들에게 시집올 때 퇴계의 집이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돈집에서는 상당히 안 좋아했다. 안 좋으면 하지 말지 또 하는 건 뭔가 싶은데 그 시절에는 그렇게 집안끼리의 약조나 그런 걸로 결혼하는 일이 많았던 듯.

어쨌거나 사돈댁에서는 혼수를 대충 해 보낸 데다가 이황이 사돈집에 방문했을 때도 냉대를 당했다. 심지어 그가 앉은 마루를 그가 떠나자 대패로 밀어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집안이라도 며느리는 착했는지 봉화 금씨는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며느리를 이황은 잘 다독였고 자신의 문중 사람이 며느리를 안 좋게 봐도 감싸줬다. 

<지폐에 들어갈 정도의 위인 퇴계 이황>

맏며느리가 자신의 버선이나 옷을 기워 주면 잊지 않고 바늘 같은 것을 선물로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바늘이 무슨 선물일까 하겠지만 그 시대에 바느질이 집안 여자의 역할이었고 그런 일에 좋은 도구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며느리는 이런 시아버지의 사랑에 감사를 느끼며 죽어서라도 아버님을 모시겠다며 근처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실제로 퇴계의 묘 근처에 봉화 금씨의 묘가 있다.

<그는 대인배임에 틀림없다>

둘째 며느리에게는 더 대단했다. 둘째 아들이 일찍 죽어 며느리는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반집 가문 며느리답게 수절을 지키고 있었지만 외로움을 어쩔 수는 없었다. 밤마다 눈물짓는 모습을 불쌍히 여긴 이황은 사돈에게 편지를 보내 며느리를 데려가라 했다. 어찌 보면 며느리를 쫓아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아니었고 며느리의 재가를 위해 보내는 것이었다. 

<둘째 아들을 잃었건만...>

이 시대에 재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양반 가문의 시아버지가, 그것도 유교의 대학자가 며느리에게 수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재가를 위한 조치는 파격적인 것이다. 보통 대인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야사에 의하면 이후 이황이 여행 중에 한 집에 식객으로 머물렀는데 그 집 반찬들이 유난히 입에 잘 맞았다. 집을 떠날 때는 버선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것이 발에 너무나 잘 맞았다고 한다. 기이하게 여겨 알아보니 그 집의 안주인이 바로 재가 한 둘째 며느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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